‘묘서동처(猫鼠同處)’
‘묘서동처(猫鼠同處)’
  • 승인 2021.12.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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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부국장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 등장하는 사자성어 ‘묘서동처(猫鼠同處)’에는 한 지방의 군인이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그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쳤고, 중앙관리들은 ‘복이 들어온다’며 기뻐했지만 한 관리는 ‘도둑을 잡는 자가 도둑과 한통속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제 본성을 잃은 것”이라고 바른 소리를 했다고 전한다.

이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라는 뜻으로,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한패가 된 걸 말한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대학교수 880명을 상대로 6개 사자성어 중 2개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2021년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를 결과 ‘묘서동처’가 29.2%(514표)로 1위로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내년 초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걱정하는 의미로 묘서동처를 선택한 교수들도 있었다고도 전했다. 이들은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에 의구심이 가득하다(40대·기타)”라거나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60대·사회)”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사태, 대장동 개발 의혹 등 현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각종 의혹을 사고 있는 대선후보들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는 묘서동처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입법, 사법, 행정의 잣대가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며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면서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올 한 해 묘서동처의 현실을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했다”고 설명했다.

묘서동처에 이어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을 담은 인곤마핍(人困馬乏·21.1%)과 자기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툰다는 의미의 이전투구(泥田鬪狗·17.0%), 또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서 그 자리를 표시한 뒤 나중에 칼을 찾으러 온 무능함을 비판한 사자성어 각주구검(刻舟求劍·14.3%)이 각각 2∼4위에 올랐다. 5위는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을 만큼 위태로운 지경을 일컫는 백척간두(百尺竿頭·9.4%)가 선정됐다. 이처럼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대부분이 현 정부의 무능함과 불공정, 그리고 코로나 19로 피폐해진 경제와 민생의 절박함을 대변하고 있다.

작년에 교수들이 뽑은 2020년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이 정치판에서 이슈가 된 것을 빗대어 교수들은 ‘아시타비’라는 ‘신조어’로 비판했다. 2019년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의미한다.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는 살 것 같지만, 결국은 공멸하게 된다는 것을 꼬집었다. 교수들은 이렇게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연거푸 담아냈다.

대한민국의 국운을 결정할 대통령 선거가 이제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권자들은 딱히 어느 곳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역대 최고의 비호감 대선국면이다. 이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의혹과 한탄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뽑을 사람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대, MZ세대의 ‘지지 후보 없음’ 여론 조사 결과는 대한민국의 미래들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투영하고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각종 의혹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장동 개발 의혹과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 등 각종 의혹들로 인한 여야의 특검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또한 진영 논리에 빠진 정치권은 국민들을 반쪽으로 가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후보가 더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한 선택 보다는 ‘저쪽’이 이기게 둘 수 없으니 우리가 뭉쳐야 한다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참담하지만, 최선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데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금부터는 대선후보들이 쏟아내고 있는 공약과 진정성을 꼼꼼하게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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