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이죽서 비롯된 부대찌개, 한류 타고 세계로~
꿀꿀이죽서 비롯된 부대찌개, 한류 타고 세계로~
  • 김종현
  • 승인 2021.12.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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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42) 시대 따라 변하는 음식문화
신토불이
동의보감 “태어난 곳 음식이 몸에 적합”
1989년 첫 농산물마케팅 슬로건 사용
2006년 대구도 ‘대구10美’ 선정·홍보
역사의 아픔 서린 음식
미군부대 음식쓰레기 끓여 먹다
담배꽁초·이쑤시개 조각 나오기도
군용 신발 쇠가죽 삶아 술안주로
‘아미스튜’ 열풍
신토불이
신토불이의 유래는 BC 100년경의 ‘대승경까지 올라간다. 그림 이대영

대구문화에선 아직도 명문대가(名門大家)의 음식문화가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염매시장(廉賣市場)에서 영남유림의 이바지(잔치)음식을 조리판매하고 있어 과거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다. 여기서 이바지란 연회(宴會) 혹은 잔치의 옛말이다. 이바지음식은 오늘날 용어로 ‘토핑(topping)’ 혹은 ‘드레싱(dressing)에 해당하는 ‘고명’으로 음식철학의 끝판이다. 그러나 이바지음식도 머지않아 곧 서양문화에 밀려 사라질 처지에 놓여있다.

영남유림의 선비음식문화가 가장 꽃피웠던 영조 때 청송군 파천면에서 1880년 99칸의 대저택을 세우고, 만석꾼으로 살았던 심처대(沈處大) 갑부가 먹었던 ‘심부자밥상’이 명맥을 잇고 있다. 또한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300년간 경주시 교동 신라 요석궁터(瑤石宮址)에 임좌병향(壬坐丙向)의 집터를 마련한 만석꾼이었던 최 부자 집의 접빈객 음식문화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이었다. 특히 심 부잣집에서는 음식을 마련하는 안채주인이 바깥채의 손님을 먼발치(二一牆孔)에서 보고, 지병(持病)과 신체적 특이성을 간파해서 유해식품을 피하고 약성(藥性)을 높이는 사상체질(四象體質)에 기초한 음식을 마련했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음식 스토리텔링

우리나라의 지역토산품(농수임산물)에 대한 식품마케팅(food marketing)은 1989년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회장인 한호선(韓灝鮮, 1936년 원주출생)이 일본의 농업학자였던 하스미 다게요시(荷見武敬, はすみたけよし,1929~2006)가 쓴 ‘협동조합 지역사회의길’에서 신토불이(身土不二, しんどふに)라는 용어를 읽고 농산물마케팅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하스미는 1907년 일본제국 육군 약제감(藥劑監) 이시즈가 사겐(石塚 左玄,いしづか さげん, 1851~1909)이 식양회(食養會) 기념식사에서 “자기 고장의 식품을 먹으면 몸에 좋으나 남의 고장 건 나쁘다”는 말에서 따왔다.

사실, BC 100년경의 ‘대승경(大乘經)’이란 불경에서 “어둠과 밝음은 둘이 아니고, 몸과 흙도 둘이 아니다. 성질과 수양도 같은 것이고, 실체와 형상이 같다.”는 구절이 이미 있었다. 당나라 묘악대사 심연의‘유마소기(維摩疏記)’, 북송의 승려 지원(智圓)의 ‘유마경략소수유기(維摩經略疏垂裕記)’에서 “인과법리에서 태어난 인간의 몸은 흙과는 다른 2개가 아니다(二法身下顯身土不二).”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준(許浚, 1539~1615)이 1613년에 간행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내가 태어난 땅에서 산출된 음식물이 몸에 가장 적합하다.”라는 구절이 나오고 있다. 서해안에 연접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신토불이 마케팅을 벤치마킹해서 홍어삼합(홍어, 묵은 김치와 막걸리), 고흥삼합(키조개, 한우고기와 표고버섯) 등에서 벗어나 여수10미(돌산갓김치, 게장백반, 참서대회, 한정식, 갯장어 회, 굴구이, 장어탕, 갈치조림, 새조개 전골, 전어구이), 목포9미(세발낙지, 홍어삼합, 민어회, 꽃게무침, 갈치조림, 병어회, 준치무침, 아구탕)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전주10미(열무, 황포 목, 애호박, 파라시, 서초(煙草), 무(蕪), 게, 모래무지, 미나리, 콩나물), 나주5미(곰탕, 홍어, 장어, 불고기, 한정식) 등은 신토불이식품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1993년 8월 배일호(1957년, 논산출생)의 노래 “이 때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 순이는 어디가고 미쓰 리만 있느냐? 쇼윈도의 마네킹이 외제품에 춤을 추네. 쌀이야 보리야 콩이야 팥이야, 우리 몸에 우리 껀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앨범이 판매되어 2000년 초반에 크게 유행했다. 이런 세상흐름을 낚아채고자 지역농산물과 전통음식마케팅이 대세를 형성했다. 이에 편승해 2006년 대구시도 대구10미를 선정해 홍보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임진왜란 후 1601년 안동(安東監營)에서 대구로 옮겨왔으나, 전라감영은 전라북도는 물론 전라남도와 제주도까지를 조선시대 초기부터 관할하고 있었기에 기호유림(畿湖儒林)의 본산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문화에 있어 음식, 노래 가락(창, 마당놀이, 가사) 등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아무리 양반이라고 해도 실권을 잡은 아전만 못하고, 아전의 실권도 노래 한 가락 뽑아내는 예기(藝妓)만 못하며, 다재다능한 예기라도 지음지인(知音知人)에겐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지음지인도 이곳 전주음식에는 맥을 못 쓴다. 마치 과일 배 맛이 아무리 좋아도 늘 먹는데는 무만 못하듯이(班不如吏,吏不如妓,妓不如通,通不如食,梨不如菁)”라는 사설을 늘어놓는다. 이를 두고 전주4절(全州四絶) 혹은 전주사불여(全州四不如)라고 하며 결국은 한마디로 ‘전주음식이 으뜸(全州食兀)’이라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하고 있는 전주는 2012년에 ‘음식창의도시(food creation city)’로 글로벌 음식문화(golobal food culture) 네트워킹에까지 등록했다.

◇유엔수프(UN Soup)와 부대찌개(Army Stew)까지

우리말 국어사전에 ‘꿀꿀이죽’이라는 단어는 ‘먹다가 남은 다양한 음식을 섞어 끓인 죽’으로 풀이하고 있다. 6·25전쟁으로 식량이 없어 미군부대 혹은 유엔군에서 빠져나온 음식쓰레기(잔반)에다가 물을 타고 배탈이 덜 나게 다시 끓인 죽을 꿀꿀이죽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도 지식수준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했다. 지게꾼들은 ‘유엔 뒷구멍 탕’, 영어를 좀 배운 사람들은 ‘유엔수프(UN soup)’라고 했다.

대구 칠성시장에서는 10환이면 철철 넘치게 꿀꿀이죽을 사먹을 수 있었다. 재수 좋은 날에는 소시지 덩어리, 재수 없으면 담배공초에다가 이쑤시개조각까지 입천장을 찔렀다. 2017년 텔레비전 방송에 대중가수 윤항기((尹恒基, 1943년생)와 윤복희(1946년생) 남매가 6·25전쟁 때 고아로 꿀꿀이죽을 사먹다가 양담배 맛을 봤다고. 군용신발(워커)이 쇠가죽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헌 워커를 푹 삶아 ‘워커 스테이크(Walker Steak)’라는 술안주를 칠성시장에 팔았다. 심지어 선무당이 사람 잡았다. 오일(oil)이 기름이라고 자동차 엔진오일(mobile engine oil)을 훔쳐 튀김음식을 해먹다가 배탈로 고생했거나 죽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대구출신 이시형(李時泂, 1934년생) 박사는 칠성시장에서 꿀꿀이죽(모조리 탕)을 사먹다가 이쑤시개에 입천장이 찔렸다. 음식에까지 몰상식하게 장난을 치는 미군에게 격분을 참지 못했다. 곧바로 미군부대 군목(軍牧) 압(Yap) 소령을 찾아갔다. “당신 미군의 음식쓰레기를 대구사람들이 먹고 있으니, 짬밥(잔반)통에 이쑤시개, 담배꽁초 등의 오물을 버리지 말아주세요(Please do not throw away filth such as tooth-picks and cigarette butts in the food waste bin).”라고 부탁했다. 군목(軍牧)은 확인을 위해 칠성시장에 나와서 한 그릇 사먹어 보았고, 확인한 사실을 예하부대에 공문으로 보냈다. 이후는 담배꽁초 등의 오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 미군부대매점(PX)에서 나온 각종음식이 좋은 품질에 싼 값으로 인기였다.

특히 미군 배급품(C-ration)으로 나온 소시지, 햄, 통조림 등에다가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만든 부대찌개(Army Stew)의 인기는 대단했다. 1966년 10월31일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 1908~1973)이 방한 중 부대찌개를 먹어본 뒤에 극찬했다고 해서 ‘존슨 수프(Johnson soup)’ 혹은 ‘존슨 탕(Johnson stew)’이라 했다.

최근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 집콕생활(home-stay life)의 답답함을 스스로 위안하기 위해 매콤한 부대찌개(comfort food)가 환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공황 사재기(panic buying)를 했는데 캔 종류의 음식자재는 유통기간 1년이 지나자, i) 냉장고털이 혹은 찬장털이 이벤트음식으로, ii) 세계를 휩쓸고 나가는 한류에 편승해 신선한 한국음식 가운데, iii) BTS 팬덤(fandom) ‘아미(Army)’와 유사한 ‘아미 스튜(army stew)’라는 부대찌개가 선풍이 되고 있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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