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것
몸이 수고로운 것
마음이 불타는 것
문명에서 밀려난 것
내 손으로 만들어진 것
섣불리 재가 되지 않는 것
서열을 모르는 것
천천히 알아지는 것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것
지킬 & 하이드가 아닌 것
오만하게 자존을 지키는 것
가난해도 부끄럽지 않은 것
배고파도 낭만을 잃지 않은 것
지적 물적 허영이 없는 것
무엇보다 자연과 하나인 것
기교부리거나 성형하지 않은 것
속도와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것
찌그러지고 녹슬어도 그냥 자신인 것
겁 없이 사랑하고 비바람이 두렵지 않은 것
천둥벌거숭이처럼 세상소리에 놀라지 않는 것
고독하고 높고 숭고한 것…
◇유혜경= 서울生. 강원도 원주에서 詩作활동중. 서울동덕여고 졸업. 원예학, 국어국문학, 힌디어 힌디문학사 공부. 저서: 자전적 에세이 <그림자이야기>,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노마드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등.
<해설> 나열하는 문장들은 모두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 느리게라는 제목부터 달고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골고루 섞인 해야만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보면서, 완벽하게 절제된 저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일까 싶은 생각을 하여 본다. 헤아리며 되새겨 보면, 하나같이 선문답을 하는 것 같다. 적당히 뒤섞인 문장들에서 뭉글뭉글하고 노곤한 지침서를 읽어 내려가는 모범생들이 보이는 듯하다. 화자의 다짐이 차츰 차츰 선명해지는 것 같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