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팔조, 신상원 ‘허의 공간’展… 시간과 행위를 겹겹이 쌓아올린 점
갤러리 팔조, 신상원 ‘허의 공간’展… 시간과 행위를 겹겹이 쌓아올린 점
  • 석지윤
  • 승인 2022.01.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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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중심으로 글씨 쓰는 예술 서예
어려운 해독 탓 소통의 부재 이어져
문자 버리고 도구인 붓·먹·종이 활용
곡선 형태 만들며 반복적으로 점찍기
여백 없는 건 의미 개입 막겠다는 뜻
작품명도 날짜·시간으로 단순하게
“작품은 내가 만든 행위의 결과값
나만의 시그니처 가질 생각 없어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작업할 것”
신상원작-20211207
신상원 작 ‘20211207’

신상원작-2021102412341
신상원 작 ‘2021102412341’

알 속 병아리가 완전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미와의 협공으로 알을 깨는 것이다. 어미가 알을 낳고, 품고, 마침내 알을 쪼아 깨트리지만 완전한 생명체로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병아리 자신도 알을 깨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찍 서예에 입문하고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며 뼛속까지 서예인이었던 신상원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예와 결별한 것은 일종의 알을 깨는 의식이었다. 문자를 근간으로 예술성과 인격수양을 동시에 추구했던 서예의 특성으로 견지됐던 엄격성이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의 기질과 배치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서예와 결별하고, 새로운 예술세계에 숨을 불어넣는 일을 시작했다.

◇서예 해체로 예술적 자유 추구

기존의 질서를 끝간데 없이 내몰면 천길 낭떠러지 아니면 신세계다. 예술가는 신세계를 여는 데 평생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걸림 없는 자유를 갈망하며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마침내 새 세상을 연다. 신 작가는 천상 예술가다. 예술이 숭배해 마지않는 자유를 향해 거침없는 질주를 거듭하며 마침내 신세계를 열고 싶어한다.

그가 서예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예술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배경에 서예가 가진 두 가지의 난맥상이 있다. ‘소통의 부재’와 ‘엄격성’이다. 문자를 근간으로 하는 서예의 속성 상 해독의 어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한자가 사라진 현대인에게 한자는 해독 불능의 문자가 되었고, 한자를 근간으로 하는 서예는 직격탄을 맞았다. 소통의 부재는 피할 수 없는 난맥상이었다.

“소통하지 못하는 예술에 회의를 품었고, 소통하기 위한 예술을 시작했어요.”

서예가 가진 ‘엄격성’ 또한 그를 고뇌에 빠트린 원흉이었다. 글자가 올바르게 쓰여 졌는지에 대한 검열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였고, 이러한 분별적 태도는 예술이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픈 열망은 대학 재학 시기부터 발현됐다. 과감하게 문자와 결별한 것은 작가의 길을 본격화하면서다. “문자가 장벽의 원인이라면 원인 제거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결단이었다.

서예에서 문자를 빼면 남는 것은 붓과 먹 그리고 종이다. 최근 시작한 갤러리 팔조 개인전에서 만난 신 작가의 작품들은 비록 문자는 버렸지만 그가 서예로부터 완전히 발을 빼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종이, 먹, 붓 등 서예의 구성요소는 유지하고 있다. “서예는 저의 뿌리인데 온전히 서예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저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죠.”

◇의미를 배제하고 조형성에 집중

작업은 먹에 붓을 담근 후 종이에 점을 찍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왼쪽에서 오른쪽 가로로 점을 찍어 곡선 형태의 패턴을 만든다. 이 패턴은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차곡차곡 쌓는다. 점찍기가 끝나고 나면 종이에 남는 것은 오직 점(點) 뿐이다. 흔히 서예나 동양화에서 중요한 개념인 여백은 화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여백의 부재는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적 토대가 된다.

그가 “동양화에서 여백은 필수다.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선방을 날렸다. 하지만 작가는 화면을 점(點)으로 가득 채우며 여백을 불허(不許)한다. 이러한 방식은 “그림에 그 어떤 의미도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소신의 결과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전의 종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을 여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그 공간에 어떤 이미지가 그려졌을 때 나머지 공간이 비로소 여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했다.

빈 공간에 이미지가 들어가고 여백이 생겨나면 화면에 자연스럽게 의미가 부여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이 행위의 결과로만 드러나기를 희망했다. 그는 영리하게도 화면에서 여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미지와 여백의 관계맺음을 원천 차단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점을 찍는 행위로 여백을 생성하고, 점이 가득히 찍힌 종이는 그 자체로 여백인 동시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화면이 됩니다. 결국 흰 종이가 현색의 종이로 탈바꿈한 것은 그 시간에 행했던 행동의 유일한 기록인 것입니다.”

그가 찍은 점(點)은 서예의 해체에 해당된다. 문자가 가지는 의미는 제거하고, 조형성으로 점을 취한다. 서예를 그만두기 1~2년 전부터 의미 없는 글씨를 써 오다, 서예의 해체로 넘어왔다. 당나라 때의 시가 현대인의 감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시를 쓰면서 절감하면서 서예를 해체하고 조형성만 남기게 됐다.

의미부여를 불허하는 태도는 작품 제목에도 드러난다. 그는 작품이 완성된 날자와 시간만으로 제목을 정한다. 작품 제목이 숫자의 조합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는 개념 예술에서 행위 중심의 예술로 전복된 것을 의미한다. “서예에서 중요한 요소는 의미인데, 저의 작품에서는 행위만 남아 있게 됩니다.”

가로로 점을 찍으면 하나의 곡선이 되고, 곡선들은 하단에서 상단으로 쌓인다. 직선이 아닌 곡선인 이유는 그의 내면이 칼날같은 직선보다 곡선에 가깝다는 반증이다. 의미를 철저하게 배제하기는 하지만 행위 자체에 그의 내면이 무의식적으로 녹아든 결과다. “무의식까지는 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곡선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진행되지만, 작품마다 패턴들은 제각각이다. 반복적인 패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몸의 행위에 의한 결과인 까달에 종이의 규모나 먹의 농도, 붓의 상태, 날씨, 작가의 기운에 따라 패턴들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몸의 행위가 똑같이 반복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먹색만 사용하다 이번 전시에 색을 사용한 신작도 출품했다. 먹에 색을 섞어 작가가 직접 제조한 색이다. 색은 종이 표면에 흡수되고 먹은 표면 위로 올라와 화면의 분위기는 몽환적이다. 색은 그 자체로 관념적이지만 작가는 색에도 의미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작품 속 공간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

작가가 작품에 감정을 배제한다고 해서 관람자마저 작품을 감상하며 감정동요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는 그 어떤 작가의 작품들보다 자신의 작품에서 관람자가 자신의 내면과의 극적 조우를 희망한다. 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거울에 비유했다. “외향을 비추는 것이 거울이라면 내 작품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 이는 그의 화면이 ‘허의 공간’인 이유이기도 하다.

“허의 공간은 2차원 평면 가상의 공간인데, 여기에 심오함은 없어요. 우리가 거울에 비친 가상의 공간을 보는 것과 같이 제가 만든 허의 공간에서도 존재를 반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자각하기를 바래요.”

더러는 점 위에 드로잉도 가미한다. 화병이나 꽃 또는 스탠드를 점을 배경으로 삼아 그린다. 꽃이나 화병은 현실 속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선(線)으로 인식한다. 이 또한 의미 배제를 위한 기제다. 그에게 선(線)은 점(點)을 인식하기 위한 조형 요소로 제한된다. 선(線)을 거울, 점(點)을 거울에 비친 형상의 관계로 맺어주기 위한 방법론이다. “선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에 해당되죠.”

서양화에 충실한 그림도 그린다. 캔버스에 서양물감으로 일상을 그림일기 형식으로 표현한다. 예술이야말로 심오한 작가의 부산물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일상을 서양 회화의 형식으로 표현해왔다. 이처럼 그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화풍을 시리즈화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양한 화풍에 적극적인 태도는 그의 개인적인 취향에 기인한다.

“저는 저만의 시그니처를 갖는 것에 부정적이에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린 태도로 작업하는 것이 저의 취향과 맞죠. 향후에는 설치나 조형 작업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신상원의 갤러리 팔조 ‘Void of Space(허의 공간)’전은 1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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