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를 업어주고 싶다
나도 누군가를 업어주고 싶다
  • 승인 2022.01.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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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마응과 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호랑이 해라지만, 우렁찬 기운은 찾아보기 어렵고 코로나로 단절된 거리는 여전히 흉흉하다. 어머니를 해친 호랑이를 잡으러 백두산 호랑이 마을까지 찾아들어간 용이 이야기나 어린 시절 호랑이 등을 타고 학교 다녔다는 어느 소설가의 입담은 모두 우리 무의식 속에서나 용트림할 뿐, 무력한 현실이 안타깝다.

코로나가 만든 창살 없는 감옥에 적응이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호주에서는 우선 순위가 장애인 어린이 노인 순이라고 한다. 그 다음이 여성, 그 다음은 코알라, 가장 나중이 남자란다. 약자를 우선으로 배려하는 다른 나라의 사정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 현실에서는 특히 노인들의 고립과 우울이 심각하다. 코로나 전파를 막기 위한 규제와 제도들이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도 있다.

갑작스런 이상 행동을 주소로 할머니가 내원하였다. 팔순을 넘긴 할머니는 면담 중에도 자꾸 우시고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서 의사인 내게 주려고 하셨다. 하루 종일 우체국에 가서 앉아있거나 잠을 자지 않고 식사도 안하고 서성거리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고 했다. 평소 아무 일없이 잘 지내던 할머니가 왜 갑자기 이런 와해된 증세를 보이는 걸까.

할머니의 병의 발단은 가족관계 증명서 발급에 있었다. 미국에 살던 딸이 추수감사절 휴가를 받아서 어머니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입국 절차상, 자가 격리 규정에 따라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할머니는 딸을 위해 동사무소에 갔고, 그 증명서를 받아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까마득한 시절, 떼어놓고 온 젖먹이 아들이 자신의 호적에 등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첫 남편과 사별하고 핏덩이와 생이별하던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식구 많은 집에 재가하여 오십여 년을 잊고 살았던, 그 아들이 예고도 없이 자신의 이름 바로 밑에,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2009년 폐지된 호적법과 새로운 가족관계법령으로 인해 모든 친자녀는 기록하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불행했고 막막했던 시절, 고통을 잊기 위해 자학하듯 살아버린 세월, 그리고 갑자기 소환된 아들의 기억은 정신을 마비시키고 방치해왔던 슬픔은 온몸을 일제히 무너져 내리게 했다.

“그 애를 등에 업고 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보다 더 추운 한겨울이었는데 등에 후끈하게 열이 날 정도로 하나도 추운 줄 몰랐지..그거 외에는 그 애 기억이 없어요.”

젖도 떼기 전에 어머니와 헤어져야했던 아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따스했던 등은 분명 그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길러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딘가에서 사회의 무거운 등짐을 지고 우리와 나란히 버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 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흘디의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이란 책에서는 외할머니가 인류 존속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150만 년 전 수렵채집인인 호모 에렉투스의 원시부족을 연구한 결과 외할머니나 이모할머니가 있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발육이 좋았고 이들의 어머니는 더 출산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수만 번의 손길이 닿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으로 자라나고,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 종교적 신념도 아니고 어떤 사상에 기초한 것도 아닌, 선의의 동행, 이것이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아닐까. 현대는 돌봄의 시대라고 한다. 진정한 사랑은 안는 것이 아니라 업어주는 것이라고. 어머니 등에 업혀서 큰 우리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프고 고통 받는 이를 업어주는 세상으로 함께 하는 것! 새해 소망으로 품어본다.

김종해의 시 ‘눈’을 보내드린다.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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