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가장 중요하다(交也有閒)
벗의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가장 중요하다(交也有閒)
  • 승인 2022.01.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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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초등학교 3학년 운이가 창의성을 기르겠다고 두뇌개발용 큐브를 가지고 놀았다. 어느 날 학교에 가지고 갔는데 아주 친한 친구 철이가 잠깐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 주었다. 그 친구가 큐브를 만지고 놀다가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큐브가 없어졌다. 담임선생님과 학급 아이들이 책상 서랍과 교실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큐브를 잃어버린 운이는 철이가 무척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편지를 썼다.

‘철아, 내 큐브 때문에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편지 써. 철아! 안 미안해도 돼. 나는 너랑 함께 같이하면 뭘 하든 재미있어. 너는 나에게 일등의 친한 친구면서도 제일 소중한 친구야. 우리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자.’라는 내용이었다.

운이에게는 큐브보다도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릴까봐 더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친구 사이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오륜(五倫)은 부모와 자식 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부부간에는 서로 다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에게는 순서가 있어야 하고, 벗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연암 박지원의 ‘마장전’에는 ‘벗이 오륜 가운데 맨 끝머리에 있는 것은, 벗이란 위치가 하찮아서가 아니다. 또한 낮아서도 아니다’라고 했다.

오행에서 목(木)은 봄, 화(火)는 여름, 금(金)은 가을, 수(水)는 겨울이다. 토(土)는 사계절의 어디에나 붙어서 활동한다. 마찬가지로 벗이 오륜 가운데 맨 끝에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친함, 의리, 다름, 순서는 모두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네 가지 윤리가 윤리로서 시행되지 않으면 벗이 믿음을 가지고 바로잡아 준다. 믿음은 오륜의 가장 뒤에 있으면서 통괄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옛날에 심장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집에는 여자 심부름꾼과 남자 심부름꾼이 있었다. 약탕기에 남자 심부름꾼이 약을 달이면 양이 많든가 적든가 일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 심부름꾼이 약탕기에 약을 달이면 양이 일정하였다. 하루는 주인이 문구멍을 통하여 믿었던 여자 심부름꾼이 약을 달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 저런 아니 저런!’하고 놀라고 말았다. 바로 여자 심부름꾼은 약탕기에 달인 물이 많으면 땅에 버리고, 달인 물이 적으면 맹물을 더 부었던 것이다.

주인의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앞에서 소곤소곤 속삭이듯 하는 말은 솔직한 말이 아니다. ‘절대로 비밀 누설하지 마세요.’하는 말도 깊은 믿음이 아니다. 인정이 넘치도록 억지로 애쓰는 사람도 미덥지 못하다.

‘교야유한(交也有閒)’은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틈’이란 나라와 나라 사이, 산과 내의 가로막힘, 여러 사람이 모인 속에서 무릎을 맞댄 사이, 어깨를 치고 소매를 맞잡은 어떤 행동을 할 기회,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거리 등을 말한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은 어깨를 치고 소매를 맞잡을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틈이 생겨 회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한 번 틈이 벌어지면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자가 위(衛)나라에 왕을 만나려고 갔다. 재상 왕손가(王孫賈)가 공자를 이간시키려했다. “‘아랫목의 성주에게 아첨하느니 차라리 부뚜막의 조왕(竈王)께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손가는 공자가 왕을 만나 자기 자리를 탐내는 것에 틈을 주지 않으려고 한 말이다.

사랑하는 것도 틈이 있다. 두려워하는 것도 틈이 있다. 그 틈을 아첨이 잘 결합하는 듯하다가, 이간질이나 고자질이 그 틈을 파고들면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남을 잘 사귀는 사람은 틈을 잘 타야 한다. 남을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틈을 탈줄 모른다. 스스로 틈을 막은 사람은 ‘십작(十斫)’하면 된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벗의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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