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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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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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호

웅크리고 앉아 쑥부쟁이를 심어 본적이 있는가

이를테면 낯선 곳으로 본적을 옮겨

어이없이 그의 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수북한 꽃송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다 간신히 버틴다

느닷없이 옮겨지는 것

은밀히 내통한 공모자

한 동안 그 낯선 곳에서 얼마를 신음하며 지쳐갈 것인가

얼마를 더 기다려야 낯선 생이 낯익은 생으로 안길 것인가

내년이면 살 속에 씨앗을 틔워 조금씩 움직일 것이며

멀리멀리 그 언덕에 자주 빛 향내 피워 올릴 것이다

그때 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여직 내 것이라고 아니면 그 때 내 것 이었다고

몇 번의 가을이 다녀 갈 것이고

내 가엾은 발걸음이 그곳을 찾아 머물 때

내 고백도 같이 묻은 그 자리에 꽃들은

내 가슴에 저 언덕에 한정도 없이 피어날 것이다

◇이필호=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삶과 문학 회원, 대구 작가회의 회원, 2017년 시집 <눈 속의 어린 눈>.

<해설> 이동은 마음에서 언덕으로, 마음에서 땅으로, 마음에서 다음 계절로 옮겨간다. 화자가 어느 날 땅으로 옮겨주는 쑥부쟁이 꽃의 이동이 이처럼 확장되어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을 써 내린 글. 읽는 내내 공간 이동을 함께 한 덕분으로 쑥부쟁이의 성장 과정을 다 본 듯하다. 역시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다. 작은 식물을 옮겨 심으면서 큰 세상을 그려내는 필력이 대단하니, 그 사람이 시인 자신이다. -정소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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