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역설…진짜 파라다이스란 무엇인가
재개발의 역설…진짜 파라다이스란 무엇인가
  • 황인옥
  • 승인 2022.01.18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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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구도하 개인전
폐허같은 풍경 속 남아있는 삶의 잔상
누군가에겐 온기 나누며 희망 키운 곳
화려하고 편리한게 무조건 좋은것일까
담장 아래 잡초와 널부러진 살림도구
화려한 벽화와 대비 시간 경계 허물어
재개발 이전 과거·현재·미래가 공존
구도하작-버려진파라다이스
구도하 작 ‘버려진 파라다이스’.

누군가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했다. 청년 사진작가 구도하가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지향 또한 바로 이것이다. 동시대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공동체의 주된 의식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가치 체계로 환원하여 사진 매체로 표현한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시장에 내놓은 작품들은 재개발 직전의 주택가 풍경. 모두 떠나고 소수의 주민만 남아 고단한 삶을 꾸려가는 골목의 주택 풍경들이다.

사진 속 주택은 말 그대로 폐허다. 벼락이 할퀴고 간 것처럼 금이 가거나 일부가 깨어져 흉물스러운 담벼락,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슬레이트지붕, 비가 새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감싸놓은 처마밑 현수막에서 70~80년대의 힘겨웠던 삶의 잔상이 목도된다.

가족들이 온기를 나누며 희망을 일궈왔던 누군가의 인간적인 공간이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다는 사실에 작가는 소리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붙잡고 “화려하고 편리한 주거형태만이 파라다이스인지?”를 따져 묻고 싶었다. 재개발 직전까지 살았던 주민들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마음이 불편해졌던 것. 이런 이유로 전시 제목과 작품 제목이 ‘버려진 파라다이스’가 됐다.

“인간적인 공간이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과연 어떤 주거형태가 파라다이스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전국 어디나 재개발은 대동소이하게 진행된다. 사람들이 떠난 낡고 허물어진 주택과 버리고 간 살림도구나 쓰레기가 나뒹굴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 속 장소는 대구 북구 고성동. 지금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지만 공사 직전의 고성동은 폐허였다. 작가는 고성동 주택가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가 특별할 것 없는 고성동 재개발 지역에서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담장 아래 작은 텃밭이었다. 텃밭이라고 해야 3.3m²(1평) 남짓이거나 화분 몇 개가 전부지만 그곳에는 예외 없이 상추나 고추, 파 등의 푸성귀가 자라고 있었다. 남은 자들은 비록 미래가 없는 공간일지언정 희망의 씨앗을 틔웠던 것이다.

“터전이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삶의 끈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여기가 파라다이스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진을 촬영할 때 작가의 시선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한다. 아파트 문화만 접해본 작가가 오래되고 낡은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나 기억은 존재하지 않기에 특별히 추억하거나 회한에 젖을 만큼의 감정적인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직접적인 경험의 부재로 오히려 담담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작업은 주로 가로등이 켜진 밤에 진행하는데, 가로등은 조명을 받은 주택과 작가를 분리하는 매개가 된다. 이 또한 관찰자의 입장을 부추기는 매개가 된다.

주택가 풍경을 촬영할 때 중심을 잡는 대상은 화려한 물감으로 채색된 벽이다. 사람들로 북적되던 재개발 이전에 방범안심존을 위해 벽면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색채가 화려했다. 작가는 허물어져가는 주택, 낡은 담장 아래 널부러진 살림도구, 무성한 잡초들이 화려한 색채의 벽화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재개발 이전의 과거와 재개발 직전의 현재와 재개발 후의 미래가 동시에 그려지면서 초현실의 공간으로 다가온 것. “텃밭을 감싸는 원색의 초현실적인 장면은 재개발 앞에 놓인 삶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여 우리에게 주거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것 같았아요.”

구도는 다분히 기하학적이다. 지붕이 삼각 구도로 중심을 잡고, 그 아래 서로 다른 규모의 직사각형 벽과 벽이 맞물려있다. 벽 아래는 네모난 텃밭이나 둥근 화분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다. 작가가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이력이 사진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했다. “통계학은 다양한 변수들 사이의 관계들을 관찰하여 수치로 표현하는 학문인데, 그 연장선에서 사진 작업에 관계들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작업도 시작했다. 작품 ‘샤갈의 마을’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화려한 실내 풍경을 피사체로 한다. 재개발 지역과 정반대의 풍경이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견본주택의 아이러니한 디스플레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부각하며 허영심으로 얼룩진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보여준다.

“세상의 가치척도에 맞춰 사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삶인지를 묻고 있어요.”

작품 ‘버려진 파라다이스’과 ‘샤갈의 마을’의 주제는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으로 분리되어 구축한다. 전자는 ‘우리나라의 주택문화’, 후자는 ‘현대인의 소비풍조’에 맞춰진다. 미시적 주제가 거시적인 주제로 확장되어 간다.

그가 본 ‘우리나라의 주택문화’는 획일성 그 자체다. 대세는 아파트다. 주거와 투기가 결합된 아파트는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한다. 그러나 욕망을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소외된 곳으로 내몰리고, 주택을 매개로 빈자와 부자가 극명하게 갈린다. “우리가 선호하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야말로 욕망이 만든 허상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거시적인 주제인 ‘현대인의 소비풍조’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현대인의 소비패턴을 다룬다. ‘남들이 소비하니까 나도 소비한다’는 식의 유행풍조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적인 소비패턴이다. 작가는 이런 소비 행태의 근원을 거슬러 가면 ‘욕망’이 자리한다고 진단한다.

“유행에는 주체적인 사연이 없기 때문에 차갑고, 주체적인 소비에는 인간적인 이야기가 있어 따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소비 패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돌아볼 시기가 됐다고 봐요.”

이제 첫 개인전을 꾸렸지만 전업 사진작가가 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걸어왔다. 경북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살다 사진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일대 사진학과에 편입했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취미를 했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여느 청년들이 가고있는 삶의 코스를 밟았다.

삶의 노선을 바꾼 것은 미국에서다. 미국 생활 중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겨났고, 곧바로 귀국하여 사진학과에 편입했다. 그는 이미 첫 개인전에서 사진의 매력을 경험했다. 첫 전시의 첫 관람객이 마침 옛 고성동 주민이었고, 작가와 관람객은 고성동 사진을 매개로 감동을 주고받았다.

“저의 시선에 누군가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계속해서 사진작가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전시는 2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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