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술자리 단상
[문화칼럼] 술자리 단상
  • 승인 2022.02.02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주로 어울려 마시지만 혼 술도 즐긴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최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조촐한 술상을 홀로 마주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즐겁다.‘두주불사’라고 불리지만 군대생활 때 잠깐 외에는, 기억 컨데 정신 줄을 놓은 적도, 비틀 거려본 적도 없다. 술도 빨리 깬다. 한마디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허나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이런 즐거움과도 거리를 둘 때가 다가왔다. 꽤 오래전부터 이제는 술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나름 멀리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큰 문제는 없지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료진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말이 술을 삼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는 편이라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물론 지금은 컨디션이 회복되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가볍게 즐기기도 한다.

최근에 술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았다. 아름다운 덴마크 국가(國歌)와 억양이 특이한 덴마크 말을 들을 수 있는 ‘어나더 라운드’(한잔 더!) 네 명의 사내가 있다. 한때는 촉망받는 역사학도였으며 의욕에 가득 찬 음악, 체육, 심리학 교사였으나 지금은 모든 게 자신 없는 중년 아저씨 들이다.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집에서도 존재감이 없고 가족들과도 겉돌아 섬 같은 존재다.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던 중 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이들은 작은 반란을 꾀한다. ‘인간은 혈중알코올 농도가 0.05% 일 때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실험해보기로 한다.

혈중알코올 농도 0.05%라면 음주 단속 기준이 강화되기 전, 예전에 단속되는 시작점이다. 아마 보통 주량의 경우 살짝 기분 좋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들은 실험(?)을 강행한다. 수업에 앞서 알코올 수치를 맞추고자 애를 쓰고 잘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음주수업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우선 학생들과 교감이 생긴다. 선생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안타까움에서 친근함과 존경으로. 이것을 바탕으로 수업도 멋지게 이루어진다. 불협화음을 내던 합창 수업은 교사의 영감(?)어린 지도에 아름다운 하모니로 변모한다. 체육수업에 따돌리던 아이를 적극적으로 챙겨 잘 어울리게 한다. 한마디로 인기 없던 선생, 오히려 문제 거리였던 선생에서 최고의 선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가정에서도 멋진 아빠, 매력적인 남편으로 변모한다. 0.05%의 마법에 힘입어서.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이들은 실험의 성공에 힘입어 수위를 높인다. 알코올에는 사람마다 반응에 차이가 있을 테니 개인별로 더 마시는 실험을 한다. ‘007카지노 로얄’의 도박장면에서 분노로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우리의 냉혈한 ‘매즈 미켈슨’이 취해가는 모습이라니… 모두들 0.08 그리고 0.1 그 이상까지 수치를 올리자 결국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가족 간의 문제도 술로 해결되지 않고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이런 파도가 지나 간 뒤에야 평정을 되찾게 되고 이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르틴(매즈 미켈슨)의 춤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기계체조를 했던 그는 한때 전문 무용수로 활약한 진면목을 음주장면과 함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술에 대한 예찬이나 비극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술과 함께하는 인생의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 줄 뿐이다.

술자리에서 나 혼자 술을 입에 대지 않은 적이 종종 있었다. 미리 신고를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오늘은 술은 마시기 어렵다. 대체로 모두들 흔쾌히 동의해주지만, 아! 그 불편함이란…같은 자리에서 이질감이 들게 하는 것은 역시 환영받지 못한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함께 마음을 나누고, 같이 취하며 동질감을 공유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쩌면 고통도 함께 나눈다는 것인데 혼자만 쏙 빠지면 어찌 밉상을 받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최근 아예 마시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저녁자리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내 나이쯤 되면 행위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직접적이다. 즉 막걸리라도 한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몸 어딘가가 마시지 않았을 때와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더 삼가게 된다. 하지만 세상사 그렇듯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선택은 알아서 할 수 밖에. 가까운 후배가 아버지보다 더 의지하는 분을 잃었다. 한잔 술을 함께 나누며 같이 슬퍼해 줄 수밖에 없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