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백세인생 프로젝트
해피엔딩 백세인생 프로젝트
  • 승인 2022.02.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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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 문학박사
건물을 짓는 공사장에 세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었다. 길을 가던 한 사람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궁금한 마음을 내비쳤다. “당신은 지금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보면 모르오? 못을 박고 있지 않소.” 이어서 다른 한 명은 짜증을 섞어 말을 던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있소.” 또 다른 한 명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환하게 웃으며 “나는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짓고 있소.”라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이렇게 다른 답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일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다. 공사장 인부 3인의 대답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다. 극히 부분적인 측면만 바라보기, 자기 개인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기, 전체의 틀 속에서 자기 존재 바라보기 등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의 목적과 의미, 더 나아가 시간의 가치는 달라진다.

백세시대,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이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평생직장은커녕 현재의 일자리를 지키거나 찾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 안정적인 삶의 유지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백세시대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 해피엔딩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백세시대 해피엔딩 프로젝트’는 건강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에 기반한다. 거기다 건강한 경제활동으로 취미를 즐기면서 나 자신과 가족의 행복은 물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 책임을 실천하는 삶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얼마 전 해피 엔딩 즉흥극에 참여했다. 즉흥극에는 사전에 공유한 대본이 없다. 규칙과 목표가 있다면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즉흥극 배우들에게는 무한 긍정의 사고가 필요하다. 핵심은 ‘예(yes), 그리고(and)’의 기술이다. 일단 상대 배우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수긍한 다음 거기서부터 나의 연기는 출발한다. 상대 배우가 무슨 말을 하든 ‘아니오(no), 하지만(but)’이라고 대답하면 나의 무대는 거기서 끝장이다. 참여한 즉흥배우들은 무대에 서자 마자 내려오거나. 시간을 못 채우거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혼자서 흥분하거나, 말문이 막혀 억울해하거나,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내려오곤 했다. 그 즉흥극의 하이라이트는 100세를 넘긴 노교수가 장식했다. “우와, 저 걸음걸이 좀 봐, 어쩌면 저 연세에 기억력이 저렇게 좋으실까, 흔들리지 않는 표정과 적재적소에 어우러지는 동작까지, 정말 놀라워.” 대본도 없이 시간을 정확히 지켜 마무리하는 연기에 감탄했다.

백세시대에 닮고 싶은 인물의 현존은 감사한 일이다. 강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기 전, 습관처럼 전시장을 거쳐간다. 가끔 특별할 것 같지 않았던 시화 몇 점에 발걸음이 붙들려 얼음덩이 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러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 18세 이상 성인에게 초·중등학교 과정을 학습할 수 있도록 개설된 교육기관인 ‘내일배움학교’ 졸업생들의 작품전시회였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또박또박 힘주어 정성껏 삶을 표현하고 그림까지 곁들인 출품자들의 연령은 백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스쳐 지나간 세월/ 추억이 가슴을 찡하게 하는 나날이었네/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우는/ 여러 낙엽들을 멍하니 바라보니/ 나도 바람따라 구름따라// 아~ 구십이 다 된 나이에/ 때론 부끄럽지만/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하네/ 중학교 가고 싶은데// 야속한 세월아/ 너 먼저 가면 안 되겠니/ 나 여기서 공부 좀 하고 갈게/ 좋은 세월 조금만 더 머물고 싶어라”(89세, 조O자). 내일배움학교에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구순의 졸업생이다.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고 좋아서 흘러가버린 세월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향한 내일배움학교 백세 학생들의 안타까움은 기우임을 예감한다.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배우고 익히는 그 용기를 응원하고, 용감하게 도전해 해피엔딩을 외쳐보라고 백세시대가 열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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