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마스터 클래스
[문화칼럼] 마스터 클래스
  • 승인 2022.02.16 19: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70~80년대, 배움에 목말라하던 음대생들 사이에 아주 귀한 물건이 떠돌아다녔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열렸던 마스터 클래스 음원이었다. 당대 최고의 빅 스타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마스터 클래스였다. 70년대 초반에 열렸던 이 행사는 최정상의 성악가가 지도하는 것이어서 모두들 정말 흥미롭게 듣곤 했다. 비록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고, 카세트테이프의 음질도 좋지 않았지만 대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 정도였다. 파바로티의 클래스에 한국 테너 정광이 나오는데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노래를 해서 다들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지금은 유튜브로 전체를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이 마스터 클래스는 단순히 학생들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큰 비즈니스임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배우 윤석화가 출연한 '마스터 클래스'는 미국에서 제작한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수업을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희미하게나마 대가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88서울 올림픽을 기념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내한 공연 오페라 '투란도트'에 출연한 뒤 가진 세계적 테너 주세페 자코미니의 마스터 클래스는 당시 시야가 좁던 우리들에게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노래를 할 때 음정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내려간다고 생각하라는 자코미니의 말은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리고 직접 아리아를 2곡이나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성량이었다. 그동안 생각해오던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깨지는 경험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스터 클래스 하면 이탈리아의 전설적 테너 카를로 베르곤지가 떠오른다. 이분은 활동할 당시에도 대단히 우아하고 지적이었지만 은퇴 후에는 그에게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스터 클래스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토스카나 지방의 소도시 부세토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작품명을 딴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I Due Foscari)'이란 이름의 호텔을 운영하며 이를 잘 활용했으니 베르곤지에게는 이것이 아주 재미난 사업이었다. 아무튼 베르디의 고향 부세토에서 열리는 최고의 베르디아노 베르곤지의 마스터 클래스는 큰 인기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보다는 이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이 부세토를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유망주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교류도 하며 뻗어나가는 장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마스터 클래스다. 공연만 보여주는 음악제가 아니라 교육기능을 중요한 행사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 폭과 범위가 상당히 넓다. 여기에 임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나도 이 시간을 통하여 베이스 연광철의 수업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단히 값진 경험이었다. 올해는 음반으로만 만날 수 있는 대가를 모시고 행사를 열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제작극장으로서 시립예술단 공연과 자체제작 콘텐츠 생산을 통하여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공공극장으로서 관련 예술인들이 무시로 드나들면서 그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 하고 있다. 소속 예술단원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극장이지만 그런 한편 지역 예술인들의 가치를 키워나가고 그것을 잘 담아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지역 문화예술 공동체의 중심역할도 요구된다. 문화예술회관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와 가치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가치 실현의 한 방법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적극 시행하고자 한다. 올해 계획된 중요한 공연 출연진을 모시고 공연 종료 후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각 장르별 정말 존경받는 선생을 초빙하여 후학들과 함께 하는 뜻깊은 만남도 예정되어 있다. 아무튼 문화예술회관에서 좋은 공연뿐만 아니라 마스터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같이 공유하고 배움의 기회, 깨달음의 시간을 많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는 단순히 학생들이 대가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람이 모이고 만나는 교류의 장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생성시키기도 한다. 공연문화중심도시 대구에서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마스터 클래스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활성화 될 때 그 장르는 살아 꿈틀거리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하여 불리한 교육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활발한 마스터 클래스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