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준의 세상이야기] 세계정치는 무정부상태이다
[김호준의 세상이야기] 세계정치는 무정부상태이다
  • 승인 2022.02.17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호준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조지워싱턴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제관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나키(Anarchy, 무정부상태)라는 사실만 이해하여도 세계정치의 30%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아나키(Anarchy)는 세계정치에서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개념이다.

대부분의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조차도 국제정치를 단순히 국내정치의 연장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거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정치에서 국가는 중앙정부가 있고 법과 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작동된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는 세계의 모든 국가를 컨트롤할 중앙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국제법이 존재하나 어떠한 주권국가도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강제할 수 없고 국제법을 위반한 국가를 처벌할 수 없다.

1989년 12월 미국은 82공수부대(우리는 어린 아이들이 울 때 호랑이가 온다고 하고 미국에서는 82가 온다고 한다)를 보내 당시 파나마 대통령을 체포하여 마약범으로 플로리다 법정에 세웠다. 한 국가의 대통령을 다른 국가가 마음대로 감금할 수 있는가? 2002년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2003년 이라크와의 전쟁도 모두 이와 마찬가지의 케이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사회는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같다. 언제 상대방이 나를 공격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고 법적, 도덕적 지배가 없는 만국의 만국에 대한 전쟁 상태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협력이 어렵다는 사실을 설파한 철학자 루쏘의 사슴의 우화(Story of Stag)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한 다섯 명의 사람이 탄 배가 폭풍으로 난파되었다. 무인도에서 고통을 겪고 있던 그들은 구조될 때까지 토끼를 먼저 잡아서 덫을 놓은 후 이를 미끼로 하여 사슴을 잡아 굶주림을 해결하기로 상호 합의하였다. 그러나 결국 한 명이 배신하여 토끼를 먼저 잡아먹으면서 사슴을 사냥하는데 실패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사회가 무정부상태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첫째, 세계정치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이고 힘이 곧 정의인 사회이고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이다.

둘째, 분쟁의 마지막 해결수단은 전쟁이다.

셋째,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며,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Self-help).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의 생존을 위하여 부자국가(rich country), 강한 국가(strong country)를 만드는데 열정을 다 바쳐야 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하여 어떠한 부끄러운 행동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약육강식의 사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하여 호랑이를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미국이 파나마의 노리에가,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가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국을 감옥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군사력, 즉 전쟁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는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덩샤오핑은 나라가 약하고 가난하면 나라를 빼앗기고 국민은 모욕을 당한다고 했다. 1937년 일본은 중국인 30만 명을 무차별 강간, 학살하여 난징대학살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덩샤오핑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당시 일본에 단 1원도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덩샤오핑은 소국이 대국을 침탈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하여 중국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이 강해지고 부자가 되면 일본은 자연스레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의도였다.

우리가 독도를 대하는 태도도 어디까지나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일본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길러야 한다. 힘이 없으면 독도도 서울도 위험해진다. 그러나 힘이 있으면 대마도도 동경도 우리가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세계정치에서 과연 아나키를 벗어날 수 있는가? 세계 정부를 만드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으나, 하나의 국가 밑으로 세계 모든 국가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힘이 지배하는 아나키 상태에서 최고 지도자의 치국책은 당연히 국가의 생존과 존립에 있고 이는 군사력과 경제력의 증대를 통한 파워의 극대화로 달성할 수밖에 없다. 국익을 벗어나서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를 도와주고 미래를 책임져 줄 국가는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