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도 우리에게 말을 한다 -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거위도 우리에게 말을 한다 -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 승인 2022.02.24 20: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대구문협회장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켰더니 문득 거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불교 경전經典) 강의였습니다. 앞부분은 듣지 못하였고, 중간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다친 거위를 데려와 정성껏 돌보아주었다고 합니다. 상처가 깊은 다리를 싸매어 주고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짚을 깔아 포근한 우리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우면 그늘을 지어주고 추우면 우리를 천으로 감아주었습니다.

그 뒤, 기운을 차린 거위는 스님이 보일 때마다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마당을 지키면서 산짐승이 나타나거나 수상한 사람이 기웃거리면 거욱거욱 울어대며 신호를 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님은 거위의 소리만 듣고도 바깥 상황이 어떠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거위는 계속해서 사람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스님이 설법(說法)하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맨 먼저 법당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문 앞을 지키며 때로 법당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설법이 끝나면 다시 마당으로 내려가 이곳저곳을 살피곤 하였습니다.

어느 해, 스님이 늙어 입적(入寂)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거위는 먹이를 끊고 슬피 울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에 필자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라디오를 끄지 않은 채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그 뒤에 전생(前生)과 현생(現生)의 이야기가 잠시 이어지더니 나머지 강의는 다음 시간에 계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강의는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방송 사회자는 이 경전에는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안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위 이야기의 요체는 누군가에게 작은 선행(善行)이라도 베풀면, 언젠가는 보답을 받게 된다는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옛 이야기에 거위가 더러 등장합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자 어느 부잣집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박대를 당해 겨우 헛간을 얻어 잠을 청하게 됩니다. 이 때 마당에 있던 거위가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을 주워 먹는 걸 보게 됩니다. 그것은 값비싼 구슬이었습니다. 도둑 누명을 쓰게 된 나그네는 이튿날 아침에 관아로 끌려가기 전까지 꽁꽁 묶이게 되는데, 밤새 지루하지 않게 거위를 옆에 묶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이튿날 아침 거위의 똥에서 구슬이 나오게 되어 누명을 벗는다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 중심인물로 나그네 대신에 동양에서는 허름한 선비가 등장하기도 하고, 서양에서는 이름 없는 현자(賢者)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심재선생이 쓴 ‘송천필담(松川筆談)’에는 윤회(尹淮)라는 선비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중심인물이 누구이거나 간에 이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섣부른 판단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을 품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일이 생명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더욱 가벼이 해서는 아니 되는데, 그 교훈의 매개물로 거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훈은 늘 우리 둘레에 가까이 있는 사물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둘레에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합니다. ‘작은 것일수록 도리어 큰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하나씩 낳는 알 그 자체가 보물인데도 불구하고, 한꺼번에 많이 가지려고 배를 가르는 잘못을 저지르는 이야기입니다. 거위 대신에 닭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역시 동서고금에 많이 퍼져있습니다. 거위와 닭을 등장시킨 이야기를 통해 무리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에서 교훈을 많이 찾을 수 있는 혜안(慧眼)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혜안을 기르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요체가 아닐까 합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