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후보 단일화 경험의 시사점
[수요칼럼] 후보 단일화 경험의 시사점
  • 승인 2022.03.01 2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지난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고자 한 제 진심은 상대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지고 짓밟혀졌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밝히면서 대선 후보 단일화 결렬을 선언함으로써 보수 유권자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앞서 안철수 후보는 지난 13일 공식 후보 등록 첫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구체제 종식과 국민 통합의 길을 가기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고 밝힌지 일주만의 일이다. 양측의 협상 당사자는 윤 후보측의 장제원 의원이, 안 후보 측에선 이태규 선대본부장이 맡으며, 26일 만남에서는 협상 관련 최종안에 합의했다.

보수측 유권자들은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단일화를 위해 정권 교체의 일념만 품고 안철수 후보를 먼저 찾아가라'고 했고, 안철수 후보에게는 '조건 없는 단일화 용단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반면 윤 후보 측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일화 해 봐야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대선 과정에서 후보 단일화가 대선 승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과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맞는지? 그리고 후보 단일화가 대선 이후 화학적 결합을 통해 한국 정치사를 한 단계 발전시켰는지 아니면 야합으로 끝났는지는 과거 후보 단일화 경험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을 필두로 한 새정치연합과 김종필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연합이 공동 여당의 목표를 가지고 결성한 DJP연합이다. DJP연합은 1997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민정계인 박태준 의원이 합류함으로써 평민-공화-민정계 연합이라 한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이회창은 38.74%,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은 40.27%를 얻었으며, 득표율 1.53%p(표차 390,557표) 차이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성립된 선거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낙선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19.7%) 후보가 독자 출마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2002년 3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이다. 새천년민주당은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하여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으나 DJ정부의 비리로 인해 연이은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던 정몽준은 국민통합21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02년 11월 단일화 요구에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를 받아들였고, 한차례 후보단일화 토론을 거쳐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단일 후보가 되었지만, 정 후보가 대선일 전날 밤 돌연 지지철회 선언을 했다. 선거 결과 이회창은 46.58%, 노무현은 48.91% 얻어 득표율 2.33%p(표차 57만 988표) 차이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하였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노사모를 통한 인터넷 여론 장악, 김대업 씨에 의해 제기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이 큰 역할을 했다.

반면 2007년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은 후보 단일화 이슈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17대 대선은 대선일 한 달가량 앞두고 보수 진영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40% 안팎의 지지율로 대세론을 형성하면서다. 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로 나뉜 범여권 후보의 지지율을 다 합치더라도 한나라당 이 후보를 웃돌기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최대 쟁점이었으며,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의 사퇴에 이어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서 자요란스럽게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거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 51.55%, 민주통합당 문재인 48.02%p(표차이 108만 496표)로 박근헤 후보가 승리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론되는 후보 단일화의 경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단일화 성공 여부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오히려 당소속 국회의원이나 당원들이 얼마라 절박하게 결집하여 선거운동을 했는가가 더 큰 변수라는 것이다. 또한 후보 단일화로 정권을 창출했지만 화학적 결합 실패로 인해 권력 독점으로 오는 폐해가 오히려 한국 정치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 단일화는 심리적인 안정제 역할 그 이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당소속 정치인들과 당원들이 발로, 손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