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책에 대한 외경심
[대구논단] 책에 대한 외경심
  • 승인 2022.03.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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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이리저리 쌓아 둔 책의 높이는 내 게으름과 비례한다.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벼르왔지만 손을 대지 않은지가 한참 되었다. 책이 많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읽지도 않고 쌓아둔 책이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많은 책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퇴직하면서 몇 가지 저서만 남겨놓고 전공 도서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책을 공공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책장 위 천장에 닿을 만치 재어놓은 책을 내려놓자 가려서 볼 수 없었던 백암산방(白巖山房)이란 유리 액자 속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초정 김상옥선생이 써 준 예서체다. 중·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봉선화, 백자부 등 감성을 흔드는 시조를 읊으면서 사숙해 온 분이다. 꼭 한번 만났지만 깐깐하면서도 소탈한 분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나의 호 백암을 넣어 써 준 네 글자 ‘백암산방’은 내 서재의 문패다. 문학에 대한 희미한 열정으로 뒤늦게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문학 관련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책 정리를 하지 않고 미루다 보니 책 높이가 점점 더해 가고 답답함이 밀려온다.

모인 책들을 대략 분류해 보았다. 전국 발행 문학지 3종, 지역 발간지 2종, 그 밖에 문학단체의 계간지와 연간지 3종, 여러 작가들이 보내준 문학 작품집 등이다. 나를 안다고 보내준 작가의 시집이나 수필집을 읽지 않고 방치하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기껏 하는 것은 책 제목의 작품을 찾아 읽고 짧게 감사 문자를 보내는 일이다. 작가의 성의를 뭉개는 짓을 하면서도 선심을 쓰는 양 자위하는 얄팍한 자신을 되돌아본다.

요즘 쌓인 책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겉봉투를 떼지도 않은 월간지를 보면서 이런 책을 계속 구독해야 할지 갈등하지만 선뜻 결정을 못 내린다. 문인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작은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책을 그냥 버리자니 찜찜함이 엄습해 온다.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애증 탓이다. 다른 이들은 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책을 버려야 하느냐고 아무에게나 묻기도 그렇다. 문학 애정에 대한 단순한 생각, 또는 끊지 못하는 갖가지 인연으로 자의·타의로 몇몇 문학단체 모임에 메인 지도 10여 년이 넘는다.

근간 들어 자신을 살펴볼 때가 가끔 있다. 전문적 작가도 아니면서 여러 문학단체 주변을 기웃거리는 자신이 안스러울 때가 있다.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괴심이 들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얻으려고 이러는가. 문학 관련 모임에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친구들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리 지루하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2주에 한 번씩 써야 하는 신문 칼럼, 방송국 합창단원 활동은 고정된 것이고 거의 매일 빠지지 않는 휘트니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하는 파크골프 등을 소화하는데 내내 시간이 빡빡하다. 십수 년 넘게 써 온 신문 칼럼으로 칼럼니스트로 인정받는 것이 좋다. 딱딱한 칼럼 형식을 수필 감성에 접목시켜 읽기에 부담이 없는 나름의 부드러운 글 체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변화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이면서 창조적인 가치를 모색하는 일이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늦은 나이에 힘든 외국어를 왜 배우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활동하고(活到老) 죽을 때까지 배운다(學到老)는 내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중국어 하면 한자를 떠 올린다. 복잡한 한자의 획을 줄여 만든 낯선 문자가 너무 많아 헤맬 때가 있다. 한자 읽는 법이 매우 어렵고 발음이 잘되지 않는 것이 흠이다. 호텔 로비 같은 데서 중국인을 만나면 아무에게나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인다.

“你是哪国人?”(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중국인인 줄 알고 말을 걸었지만 홍콩인이거나 타이완사람이라고 자기 신분을 분명히 밝혀 온다. 같은 중국 계열이지만 국적을 아주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이념이란 단어를 되새겨 본다. 몇 마디 말을 건넨 후 내가 한 말을 알아듣겠느냐고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을 받으면 성취감에 스스로 감격한다.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다. 어쨌든 내가 하는 일은 모두가 책과 관련된 일이다. 함부로 책을 처리하겠다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내게 오는 어떤 책이든 반드시 펴보고 마음 가는 주제는 읽는 버릇하고 정리는 그 후에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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