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 와인라벨... ‘와알못’이지만 병은 수집합니다, 예쁘잖아요
[일상 속 디자인 기행] 와인라벨... ‘와알못’이지만 병은 수집합니다, 예쁘잖아요
  • 류지희
  • 승인 2022.03.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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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사진1
와인 한 병 마다에 담긴 유래와 이야기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각양 각색의 다채로운 와인라벨 속에 녹아 디자인되고 있다.

 

라벨, 정보를 품다

지역·생산년도·품종 기재

인장 찍어 유약 발라 봉인

1830년부터 장식성 가미

품질 등 상세 설명도 제공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술이 무엇이냐 물으면 “와인”이라고 답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와인을 마실 때의 분위기와 감성, 그 날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온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달쌉한 와인 한 잔을 홀짝 홀짝 마시다보면 한 병을 금새 비우게 되는데, 어쩐지 다 먹고 빈 와인병은 다른 술병과는 달리 두고 가기 아까울 때가 종종 있다. 와인라벨이 다른 술종류에 비해 유독 더 감성적이고 예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유래만큼이나 와인 속에 담긴 이야기들 때문일 것이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와인을 고를 때면 재미있는게 바로 메뉴판이 아닐까 싶다. 어려운 와인이름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두 세줄 남짓한 설명글이 그 와인을 맛보기전 설레임을 더욱 자극한다. 게다가 와인소믈리에로부터 듣는 와인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들까지 더해진다면 그 맛도 향도 이야기도 마치 하나의 작은 라벨로 남아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 같다. 와인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와인러버들이 와인병을 모으고, 와인라벨이나 코르크를 수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더 예뻐 보이는 법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와인라벨에 대해 궁금해졌다. 실제로 라벨이란 ‘작은 꼬리표’의 의미로 시작되었다. 라벨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어인 ‘에티 케트eiquette’라는 단어는 14세기 피카르디 지방의 단어였던 ‘목표물을 표시하는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estiquette’에서 유래한다. 단어의 기원은 이와 같지만, 단어의 의미를 충족시키는 포도주에 부착되는 실제 라벨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당시 사람들은 값나가고 비싼 물건에만 중요도를 두었기 때문에 빈 병은 씻어서 재활용 하더라도 종이 조각에 불과한 라벨은 씻겨서 사라지기 일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명한 포도밭과 연도가 좋은 포도주를 선호하는 소비심리 때문에 와인정보를 표기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 그리하여 라벨에는 포도밭의 이름과 연도를 상징하는 숫자나 글자, 제조인의 초상화 등이 새겨지게 되었다. 간단한 정보를 기재하고 인장을 찍어 유약을 바르고 봉인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와인라벨의 디자인이 되었다.

당시의 포도주 라벨은 절제된 형태가 필수적이였다. 지금도 여전히 몇몇 고급 와인에는 아주 심플하고 임팩트있는 라벨이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로마네-콩티나 샤토 디켐의 경우가 그렇다. 1830년 이전까지는 크레망, 니어슈타이너 백포도주와 같은 와인종류와 생산자의 이름 정도만을 기재했다. 라벨 바탕색은 대체로 황금색으로 밭 이름은 검은색으로 표기하였고 가위로 쓱싹 잘라내어 부착하는 방식이였다.
 

와인, 소품이 되다

내용 없이 라벨 형태만 제작

소비자 직접 빈칸 채워넣어

품질등급 등 객관적 지표 대신

그래픽으로 풍미 표현하기도

1830년대 이후부터는 포도 나뭇잎 무늬를 장식요소로한 테두리의 라벨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와인의 생산지와 품질에 관련한 개별적인 언급도 추가되어 기본의 심플함보다는 좀 더 디테일이 더해졌다. 배경색도 하얀 바탕에 금색, 혹은 다양한 컬러로 인쇄되었으며 지금의 라벨과 같은 일정한 형태로 제작되어 부착되었다.

처음에는 소비자들에게 와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만들어 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적 추구도 시작되었다. 재밌는 것은 지금의 “커스터 마이징” 즉, 맞춤주문제작 디자인이 이때에도 성행했다는 것이다. 좀 더 특별한 와인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일차적으로 테두리만 찍혀 인쇄된 라벨에 개별적인 사항은 손글씨로 기재하거나 추가 인쇄로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었다. 더구나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라벨의 기재내용과 디자인 요소들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독특한 라벨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라벨은 하나의 판매 마케팅과 홍보용으로 내세워졌고, 간결했던 디자인은 점차 화려한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와인라벨 뿐만이 아니라 와인병 모양 자체에 대한 변천사도 불러왔다. 와인 박물관에 가보면 1440년~1470년대 것으로 추청되는 가장 오래된 와인병은 옛 조선시대 막걸리병과도 비슷한 호리병모양으로 생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세계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을 할 정도로 기하학적인 모양부터 시작하여 틀을 깨는 다양한 형태와 소재, 데코요인들로 만들어진 와인병디자인이 출시되고 있다. 와인디자인은 예나 지금이나 포장하는 장식의 매체이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역할이 그만큼 분명해졌다.

필자도 와인을 좋아하는 수집가로써 가끔씩 빈병과 코르크를 모으지만, 특정 와인의 이름을 외운다거나 그 역사에 대한 깊이가 있기 이전에 그 와인이 가진 우아함과 아름다운 라벨에 눈과 마음을 먼저 빼앗기는게 사실이다. 기분에 따라 골라마실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매력포인트인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그 날의 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이끄는 라벨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예전에는 와인하면 떠오르는 직관적인 요소를 모티브로 표현한 라벨이 많았지만, 요즘엔 와인맛이 주는 추상적인 감각을 표현한 그래픽이미지나 서체를 활용한 타이포그래피 등 표현 범위가 훨신 다양해졌다. 와인을 즐기는 연령대층도 낮아지면서 꼭 접대용 선물로 찾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와인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다소 와인과는 무관해보이는 동물이미지나 엉뚱 발랄한 젊은 감각의 모티브들이 20대 초반층에게도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눈으로 먼저 마시고 그날의 향연을 간직하고 싶어지는 와인. 그 추상적인 감각과 시간, 역사 속에서 빚어진 사람사는 진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라벨속에 담아 간직해본다면 어떨까? 와인이 함께 하는 자리엔 일상에 소소한 기쁨들이 함께 한다. 그 순간들에 한 장 두장 이름표를 달아 차곡차곡 모아보는 일도 오래토록 묵혀둘 달쌉한 행복이지 않을까.

 
류지희 <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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