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대구의 힘,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 조감도’ 돌아오다
[화요칼럼] 대구의 힘,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 조감도’ 돌아오다
  • 승인 2022.03.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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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한 조사에서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인 돈을 언급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선 물질적 풍요에 따른 언급이 없었느냐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질문에 부가된 여러 항목에서 복수선택으로 답하고 있어서 물질적 풍요의 수위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설문에 참여한 한국인들은 여러 개를 고를 수 있는데도, 단 하나의 삶의 가치에만 응답한 비율이 높다는 것(62%)이다. 그만큼 여러 가지를 추구할 여유가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다양화, 다변화, 다각화의 필요성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며칠 전 물질적 풍요와는 거리가 먼 일로 종일 행복했다. 대구 수성에는 지역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 배내리가 있다. 이 마을 초입에는 청년들(평균 연령 70세)이 가꾸는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 안내 지도인 조감도가 서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나는 6개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는 조감도에 대한 글을 지난 가을 칼럼으로 올린 적 있다. 그후 또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언제, 누가, 어떻게 그랬는지 소리소문없이 비슷한 위치에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 조감도가 멀쩡히 돌아와 서 있었던 것이다.

배내리 길목 대로변은 LH주택공사와 물질적 풍요에 눈 밝은 사람으로 인해 개발과 투기의 대치를 상징하는 듯한 현수막들이 대로변을 잠식하고 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듯하지만, 주민들이 사는 인가는 산과 산 사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개발 또한 이곳은 제외 대상이다. 현대문명의 혜택도 아예 비껴가거나 한참 철 지난 후 녹슬고 있을 때 찾아오는 마을이다. 배내리는 물직적 풍요에 대한 바람을 일찌감치 내려놓은 청년회원들이 마을지킴이다. 백세 시대에 어울리게 평균 연령 70에 가까운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틈틈이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을 비롯해 마을을 가꾸며 산다. 세상살이가 차갑고 매서워 돌아오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은 꽃길이고, 시의 길이길 바라는 희망을 가꾸는 것이다.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길’을 걸을 때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진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숨쉬기가 편해진다. 시판 내용을 따라 읽지 않아도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들은 그냥 노래가 되기도 한다. 육사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해, 동주를 만나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게 고백하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독이고, 하운 앞에서는 풍토병으로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그 아픔을 부끄럽게도 슬픔으로 공감하며 저마다의 손가락, 발가락이 온전함을 감사하게 된다. 그러다 상화와 완영을 만나면 내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내가 너를 불러줄 때 비로소 나는 꽃이 되고, 이름을 가진 무엇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작은 산골 마을 시꽃길에서 배우는 것이다.

비록 물질적 풍요와는 거리가 있는 마을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음 부자들이 살고 있음을 어찌 알았을까? 휘발성 강한 신문의 몇 줄 글을 누가 새겨 읽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하물며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손과 발이 되어 돈이 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시골 마을 ‘시꽃길 조감도’를 찾아줄 것이라는 한 톨 기대도 없었다. 근냥 안타까운 마음에 글 올렸을 뿐인데 해를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던 조감도가 돌아와 서 있는 것을 보며 대구의 힘, 대구시민의 저력이 이것임을 새롭게 깨닫는다. 큰일이라고 부산스럽게 떠들지 않고, 작은 일이라고 소홀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일을 소리없이 실천하는 지존의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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