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소통하는 손팻말
아이들과 소통하는 손팻말
  • 여인호
  • 승인 2022.03.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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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하는 모양이네.”

“그러게.”

“쯧쯧….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 영호를 본 어르신 몇 분이 한 말이다. 두툼하고 긴 방한복을 입고 마스크에는 금방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붙어 있고 손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담긴 커다란 팻말을 든 영호의 모습이 수상쩍었던 모양이다. 마침 어르신들이 지나갈 때는 등교하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어르신 몇 분이 혀를 차면서 교문 앞을 지나갔다. 곧 교통봉사를 하는 어르신들이 신호등 양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아이들이 줄지어 교문을 들어선다. 그러던 중 두 아이가 영호 앞에 섰다. 그리고는 1학년 때부터 매일 아침에 반복해 온 그들만의 의식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하는 학교. 참 잘 했어요!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둘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영호가 들고 있는 손팻말에 적힌 글을 읽었다. 그리고 마스크에 붙은 초성(ㅊㅇㅎ)을 보고 축입학이라고 말하고는 깔깔댄다. 2022년 3월 3일 화요일 아침에 교대부초 교문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호의 마스크에는 항상 무엇인가 붙어 있다. 교표는 모든 마스크에 붙는다. 커다란 하트(♡) 하나를 붙이기도 하고, 방역수칙을 강조할 때는 ‘마거손(마스크 쓰기, 거리두기, 손씻기)’과 같이 첫 글자를 따서 붙인다. 아이들이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초성만 붙이는 때가 많다. ‘ㅁㄱㅅ(마거손)’, ‘ㅊㅈㅇ(축졸업)’, ‘ㅇㄱ(용기)’, ‘ㅎㅂ(행복)’, ‘ㅊㅊ(칭찬)’, ‘ㅅㄹ(사랑)’, ‘ㅅㅇㅅㅅ(수업실습)’, ‘ㅇㅎㅊㅅ(용행칭사),‘ㅂㅈㅅ(불조심)’ 등이다. 아이들이나 교직원들은 영호의 마스크가 늘 궁금하다. 궁금한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질문을 자극한다.

영호의 손팻말은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A4나 A3 용지에 출력을 해서 하드보드지 양쪽으로 붙여서 생각을 전했다. 3월부터는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90센티미터의 크기로 학교에 있는 현수막을 제작하는 기계로 출력을 하고 있다. 필수 내용은 위쪽에 학교의 비전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하는 학교’와 ‘사랑합니다’ 또는 하트(♡) 모양, 아래에는 교표와 학교 이름이다. 중간에 들어가는 내용은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으로 어린이보호구역 4가지 , 코로나19 방역수칙, 부초 어린이 다짐, 용기의 말, 칭찬의 말 등으로 수시로 바뀐다.

3월 4일 금요일에는 꽃사슴문화관에서 1학년 신입생 학부모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218석의 좌석이라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면서 60여 명의 학부모들에 학교를 소개하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영호는 학교비전과 아이들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 10 가지가 앞뒤로 붙은 팻말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우리 딸/아들 정말 잘 했어.’, ‘항상 사랑한다.’, ‘넌 지금도 잘 하고 있어.’ 등의 순이다. 몇 번을 함께 읽었다. 마스크에는 초성 ‘ㅊㅇㅎ’이 붙어 있었다. 교문을 지나간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영호는 학부모들 앞에서 파업을 한 것이다. 복장이 방한복에서 교복으로 바뀐 게 다를 뿐이다.

3월 3일에 교문을 지나간 어르신들이 그 뒤로는 보이질 않는다. 어디 편찮으신가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교문 앞을 지나갈 때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그때도 영호의 손에는 무엇인가 적힌 커다란 팻말이 들려 있고, 마스크에는 금방 알아보기 힘든 게 붙어 있을 것이다. 다만 날씨에 따라서 복장은 다를 것이다. 어르신들의“아직도 파업을 하네.”라는 말이 기다려진다. 그때도 영호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파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영호 <대구교대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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