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과생들의 비애
[데스크칼럼] 문과생들의 비애
  • 승인 2022.03.1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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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현 사회2부장
남승현 사회2부장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목표라고 하지만 문과생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드는 것 같습니다”

4차 산업시대를 맞아 대기업, 금융기관 취업 등에서 문과생들의 합격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과생들은 취업난을 뚫기 위해 대학 입학후에도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토익(TOEIC),토플(TOEFL)등 영어시험에서 고득점을 확보해도 이과생보다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문과생들의 취업 불이익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젠 대학입시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문·이과 통합으로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따른 정시모집에서 이과 학생들의 ‘문과 침공’이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 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올해 서울 주요 대학 정시모집 인문계열 지원자 1천630명을 대상으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 22개 주요 대학 중 8개 대학은 인문계열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나왔다.

서강대(80.3%), 서울시립대(80%), 한양대(74.5%), 연세대(69.6%), 중앙대(69.3%)에서 교차지원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 것이다. 경희대(60.6%), 건국대(60.6%), 서울대(60%) 등도 이과생의 문과 교차지원 비율이 3분의 2에 육박했다.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서 이과 학생 지원 비율이 높았던 이유는 수학에서 유리한 표준점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수학 선택과목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 학생이 확률과 통계를 주로 선택한 문과 학생보다 표준점수에서 훨씬 유리해지면서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대거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지난해 첫 시행된 통합형 수학에서 1등급을 받은 문과생(확률과 통계선택)은 5.8%에 불과했다. 2등급도 문과(확률과 통계)는 13.4%에 그쳤다.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 취지와 달리 통합형 수학을 그대로 입시 지원에 활용, 문과생들은 시쳇말로 폭탄을 맞은 것이다.

건국대 공대에 합격한 학생이 교차지원을 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국민대 공대에 갈 학생이 고려대 인문계열에 합격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실제 대구지역에서 최상위권 수성구 A고의 경우 문과에서 수학1등급을 받은 학생은 1명에 불과했고 B고는 문과생중 수학 1등급은 0명이었다.

이과 학생의 문과 침공은 국립대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교차지원으로 합격한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대(44.4%)를 제외하고 지방거점국립대 9개교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4천180명의 합격자 중 525명이 미적분/기하 선택자로 12.6%를 차지한다.

개별 대학 중에선 경북대가 26.6%(147명/552명)로 가장 높다. 이어 부산대 15.5%(84명/542명), 전북대 12.8%(84명/656명), 충남대 11.2%(47명/418명)순이다.

즉 지방거점국립대중 상위권 대학인 경북대, 부산대에서 교차지원이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시모집은 수시모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집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이과학생들의 문과 침공이 거세지면서 문과생들의 합격률은 대폭 하락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기존 대학 모집 인원이 문과와 이과가 5대5로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통합수능으로 이과 학생들에게는 서울 주요 대학의 모집 규모가 20% 정도 더 커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학에 자신이 없어 문과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과계열 학과들이 적성에 맞아 고2때 문과를 지원하는 순간, 대학입시에 이어 취업문까지 막히고 있는것이다.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수학만을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성을 갖춘 문과생들이 대학에서 AI, 데이터솔루션 등을 배우면서오히려 더 나은 인재로 양성될 가능성도 있다.

통합형 수능이 2028년 대입까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 영역별 변환표준점수를 통해 문·이과 유불리 현상을 보정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문계 학생의 재수와 대학간판만 보고 상향지원 후 합격한 뒤 반수를 하는 자연계 학생들이 급증할 것이다.

일선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 이과선호(대구 C고의 경우 9반중 7반 이과, 2반 문과)현상도 더욱 가속화되면서 문과 자체가 붕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에서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통합수능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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