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정치적 하방의 의미
[수요칼럼] 정치적 하방의 의미
  • 승인 2022.03.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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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중국은 1949년 신중국 건국한 이후 국가가 경제문제에 대하여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사회주의에 입각한 경제발전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가속화하고, 인민공사를 조직함으로써 공산주의 사회로 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는 중국 사회에 경제적, 인간적 재난을 초래하며 실패로 끝을 맺었다. 이로 인해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자 마오주의자와 당 관료 사이의 정치 투쟁이 격렬해졌고, 이로써 정치적 기반을 잃은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가 주석을 사임하고 류사오치가 국가 주석이 됐다.

이러한 정치적 과정에서 마오쩌둥은 위기의 탈출 수단으로 하방운동을 두 번씩이나 이용했다. 첫 번째는 1950년대말 대약진운동(1958~1960년)으로 알려진 대규모 노력동원정책이다. 이 운동은 도시와 농촌 사이 기술 인력의 균형적 배분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소위 지식인이나 도시청년층에 대한 대책으로서 도시의 실업상태에 있는 젊은이들을 농촌의 경제 및 문화적인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에 배치하였다. 그 당시 하방운동의 결과 1,6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도시를 떠나 농촌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하방운동은 대약진운동에 실패한 마오쩌둥은 권력 회복을 목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큰 정치적 위기를 겪었던 마오쩌둥은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4인방과 홍위병을 동원해 문화대학명이라는 미명으로 반동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되찾았다. 홍위병으로 인한 더 이상의 혼란을 원치 않았던 마오쩌둥은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다시 배우자."라고 주장하며 1968년 상산하향(上山下?) 운동을 전개해 지식 청소년들을 깊은 산골로 추방했다. 이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홍위병들을 농촌으로 보내 사회 분란을 감소시키려는 의미도 있었다.

하방운동의 결과 도시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되어 정착함으로써 농민들에게 변화를 수용하게 했다. 또한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낮은 농민들의 중국 사회주의 정치의식화운동에 기여했다. 반면 이러한 하방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들 스스로 농촌에서의 생활을 '비참한 상태', '희망없는 전투에 배치된 병사', '모든 사회가 수탈한 불행한 자' 등으로 표현하였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농촌으로부터 도망하여 비밀리에 도시로 들어와서 체포의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며, 모든 거주이전은 물론 식량배급까지 박탈당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중국 건국 시기에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자행되었던 하방운동이 홍준표 의원에 의해 대구에서 소환되었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꿈'에 '이젠 마음 편안하게 하방(下放)할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정권교체가 되었다. 중앙정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맡기고 저는 하방을 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리모델링 꿈이 좌절된 지금 제가 할 일은 나를 키워준 대구부터 리모델링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하방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홍의원의 정치적 하방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모래시계 검사로 인기를 누리던 홍준표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송파구갑에 당선된 이후 서울 동대문구 을로 선거구를 이동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홍의원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4연속 동대문구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병두 후보에게 패배한 후 "중앙 정치계에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패배한 후 몇 달 동안 야인 생활을 하던 중 김두관 경남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치러진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그 당시 야권의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치적으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홍준표 의원은 2017년 19대 대선 실패 후 2020년 제20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어렵게 당선되었다. 그후 2021년 제20대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에 도전했으나 아쉽게도 2위를 차지하면서 중앙정치 진입에 실패했다. 홍의원의 또 다른 정치적 도전은 대구시정을 염두에 둔 스스로의 정치적 하방이다. 홍준표 의원이 대구시장직에 도전하는 š은 자유이며, 경선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아젠다가 생산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성을 국회의원을 그리고 대구시장을 정치적 도약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지역구나 지역 사회에 또 다른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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