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하지 않아도 될 말
[달구벌아침] 하지 않아도 될 말
  • 승인 2022.03.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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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살아가면서 해야 할 말도 많지만 하지 않아도 될 말도 많은 것 같다. 굳이 그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되었었는데 괜히 그 말을 해서 좋았던 분위기를 한순간에 망치는 경우가 있다.
말이란 것이 그런 것 같다. 내 입속에 있을 때는 내 것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 즉 나의 말을 듣고 해석하는 사람의 것이 된다. 말한 의도대로 잘 전달될 때도 있지만 의도와는 정반대로 해석을 하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말이 곡해(曲解) 되기도 한다. 말한 의도와는 정 반대의 반응이 돌아와서 당황스러울 때도 간혹 있다.
우리는 머리에서 생각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직접 해보면 진짜 힘든 일이란 걸 알게 된다. 분명 생각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 될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말로 표현을 해보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말로 먹고살고 있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필자도 말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 앞에 서서 강의를 하고,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강의를 하고, 동영상 촬영을 하여 온라인 상에 있는 다수의 사람에게 말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말을 하는 순간이 되면 긴장이 되고, 말하는 것이 두렵고, 떨리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대중 앞에 서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처음 강의를 할 땐 주된 관심은 '무슨 말을 할까'에 있었다.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 같은 것을 발견하면 노트에 적어 뒀고, 강의가 있는 날은 어떤 멋진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까에 집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강의 경력이 많아지면서 좋은 강의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좋은 강의는 좋은 말을 하고 멋진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월을 돌이켜보니 말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을 때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했을 때였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내가 전하고자 한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낯부끄러운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이제 말을 하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할까 보다는 무슨 말을 하지 말까에 더 신경을 쓴다.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점검하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될 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고, 종교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다. 또는 신체적 약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하, 약자를 향한 농담 등 무수히 많다.
말이라고 모두 같은 말이 아니다. "쟤 이혼했다며" "애가 진짜 못생겼지 않냐?" "입양해온 아이라며"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난 뒤 주위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면 그들은 꼭 이렇게 말한다. "뭐 내가 없는 말했나!" 그래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보았다고, 내가 느꼈다고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투로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하는지에 따라 말은 다른 의미를 품는다. 그래서 약이 되기도 하고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말 한마디는 사람을 살려내는 힘이 있다.
말로 흥한 사람은 말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특히 대중 앞에서 말 한마디의 실수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로 한방에 훅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 않은가. 내 입을 떠난 말은 내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것이다. 각자 자기 맘대로 잘라내고, 덧붙이고 해서 자기식대로 가공을 한다. 입 밖에 나온 말이 무서운 이유다. 몸의 상처는 피부에 남지만 말의 상처는 뼈에 남는다는 말이 있다. 피부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받은 상처는 가슴속에 남아 평생을 갈 수도 있으니 깊이 새길 말이다.
우리 모두는 강의자와 같다. 자기 삶을 사람들 앞에 말로서 전달하는 강의자.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말을 잘한다는 것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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