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근태 개인전 '무심'...“무너짐 없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 그림은 무의미하다”
작가 김근태 개인전 '무심'...“무너짐 없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 그림은 무의미하다”
  • 황인옥
  • 승인 2022.03.3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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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에서 30일까지
질문·해답 반복 결정체 ‘단색’
상처 같은 흠집·찢김은 소통
단색 아래 칠해진 색은 현실
서구 모더니즘 결별 ‘숨’ 연작
백자 보다 분청 좋아 ‘결’ 시작
‘참나’ 발견 위한 여정은 계속
김근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대구 전시장
김근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대구 전시장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근태 작가.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근태 작가. 리안갤러리 제공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낙담하기는 이르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행하고 툭툭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고, 한 뼘 더 성장한 그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살면서 무너지는 일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반복된다는 데 있다.

작가 김근태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림을 그만두어도 좋다”고 했다. 그에게 그림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매개인 까닭에 한 순간의 무너짐도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때가 온다면 더 이상 도구로서의 그림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였다.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가의 개인전 제목인 무심(無心)에서 그가 추구하는 삶의 경지가 명징하게 드러나 있다.

◇ 사유의 세계 단색화로 드러나

그의 그림은 단색화다. 백색이나 흑색 등의 단색이 주조(主潮)를 이룬다. 한국 단색화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그렇듯 그의 단색화도 ‘물질을 통한 정신의 발현’에 맞춰져 있다. 그는 비가시적인 사유의 산물이나 궁극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본질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매개로서 물성을 바라본다. ‘마음이 무엇인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과 해답을 반복했던 사유의 결정체로 단색화를 인식하는 것이다.

작가의 대표작은 ‘Discussion(토론·담론)’이며, ‘숨’ 연작과 ‘결’ 연작으로 구성된다. ‘숨’ 연작은 석분(石粉)과 물감 그리고 러버(rubber)접착제를 섞어 광목 캔버스에 수평으로 반복적으로 칠한 작품이다. 투박하면서도 질박한 표면에 한국의 정취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 연작은 흰색, 검은색, 울트라마린 등의 심연을 연상시키는 단색 물감을 화면에 바르기를 반복하며 자신이 원하는 농도에 도달하고자 한 작품이다. 두 연작 모두 형상보다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작가의 행위로서의 회화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그에게 작품이 “정신의 발현이며, 행위의 산물”인 까닭에 잡다한 형식으로 추구하는 시각적인 유희는 사족에 불과했다.

화면에 완결된 백색이나 흑색은 거짓없는 단색화지만,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단색 아래 여러 색들이 겹쳐져 있다. 그는 “청정한 본질의 세계를 추구하지만 현상계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의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밑에 드러난 세계는 고달픈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캔버스 전체를 백색이나 흑색으로 가득 채운 작품 앞에서 작업 과정이나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속사정을 작가라도 모를 리 없을 터. 그도 관람객의 난맥상을 간파하고 힌트가 될 만한 작은 단초 하나는 마련해 두었다. 단색 위로 튀어 오른 흠집과 찢김이 그것이다. 이 상처같은 흔적들에서 단색 아래에 칠해놓은 색의 이력들을 적나라하게 확인 할 수 있다. 흔적을 완벽하게 덮을 수도 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남겨 두는 쪽을 택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런 구조는 소통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가가 단색 위에 드러나는 작은 흔적을 불교의 일체법(一切法) 중 하나인 무위법과 유위법(有爲法)에 빗대어 설명했다. 유위법(有爲法)은 중생의 시비분별이 남아 있는 법이고,무위법(無爲法)은 시비분별이 떨어진 부처님의 법을 말한다. 그에게 화면 속 단색이 무위법에 해당된다면, 흔적은 유위법의 상징이다.

“부처님도 무위법을 말씀하시기 전에 유위법으로 설법을 하셨다. 나에게 흔적은 소통을 위한 일종의 유위법에 해당된다.”

◇ 램블란트에게서 힌트를 얻다.

그도 서구의 모더니즘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다. 정확히 대학을 졸업하던 1981년부터 1993년도까지였다. 한국전쟁 휴전 협정일에 태어나 한국 근현대사라는 질곡의 시간들을 온 몸으로 살아낸 그가 맹복적인 서구 동경과 서구 따라하기에 집중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적어도 네덜란드에서 램브란트의 그림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는 서구 모더니즘을 신봉하며 해체와 결합,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기학학적인 작업들을 이어왔다. 당시 그의 그림은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려는 듯 맹렬한 기세로 도회적인 작업들에 천착해갔다.

그림에 있어 그는 두 번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 모더니즘과 결별했고, 탐구의 대상을 자신에게 그리고 본질의 세계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첫 경험은 40대 초반이었다. 당시 램브란트의 그림을 직접 마주하면서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툭!’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서구 모더니즘을 추구해왔던 나의 삶 자체가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간과 기술, 인간의 고뇌가 축적된 램브란트의 그림 앞에 서자, 지금까지 그가 해 왔던 공부들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내렸다.

램브란트 그림 앞에서 절망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드로잉으로 손만 풀뿐, 좀처럼 붓을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경주 남산 삼릉계곡과 칠성계곡을 오르면서 불현 듯 희망의 불꽃을 보게 됐다. 경주 남산 곳곳에 숨어있는 불상이나 탑들에서 세상과 홀로 마주한 인간의 기상과 만나게 됐다.

그는 당장 서울로 올라와 전시 일정을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선배 작가들이 부처를 그릴 때, 그는 우리 산하의 돌을 가루로 만들어 평면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지극한 추상의 세계였다. 이 때가 ‘숨’ 연작의 시작점이자, 탐구의 대상이 서구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시점이었다. “그림을 베끼는 것은 한계에 봉착하게 되지만 근원으로 들어가면 그런 문제는 해결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램브란트의 그림 앞에서 서양 모더니즘보다 내 개인의 문제가 해결이 안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선불교의 간화선(看話禪) 만나 사유가 깊어지다.

그의 작업이 구도적(求道的)인 경향으로 더 짙게 흐른 또 한 번의 사건은 선불교의 간화선(看話禪)을 만났을 때다. 10여전 전의 일이었다. 화두에 집중하는 명상법인 간화선에 몰두하면서 깨달음의 상태를 갈구하게 되었고, 번뇌가 사라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캔버스에 물질을 가공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부터 개인의 문제에서 본질의 문제로 넘어갔다. “본다는 것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그때 시작됐다.” 서양의 그리는 형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더 깊은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에워쌌다. 형식을 버리자 남는 것은 정신이었다. 그러면서 존재의 본질, 미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는 점 점 더 깊어졌고, 물질의 공간인 캔버스는 의미의 공간으로 치환되어 갔다.

이 시기 그의 ‘숨’ 연작도 수행성을 더해갔다. 특히 분청사기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을 뜨면서 그의 화면은 더 토속적이고 초월성으로 변모해갔다. “형태 내부에 있는 숨을 그리기 시작하자 줄줄이 엮여졌다. 고려불화가 보이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도 보였다. 그러나 내게는 분청이 잘 맞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분청같은 작업들이 나왔다.” 이 시기 더 다듬어진 유화 작품 ‘결’ 연작들도 쏟아졌다.

◇ 단색화는 매일매일 가보는 새로운 세계

드러난 현상으로 보면 다 같은 단색화다. 그러나 작가에게 단색화 하나하나는 각각의 새로운 세계에 해당된다. 그가 새롭게 가고자 발을 담근 매 순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잘 닦여진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가보지 못한 외로운 길에 매일 매일 끼어들었던 작가의 고군분투가 단색화 작품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색을 쓰고, 어떤 재료를 다루든 그때그때 느끼는 촉감과 물성들은 매일 매일이 새롭다. 그래서 매일이 다를 수밖에 없고, 작품 하나하나가 다 새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견성할 계기가 있다면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좋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것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모습을 버리고 ‘참나’를 발견하기 위한 깨달음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여정들이 그림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 그림이 깨달음을 위한 도구가 되듯, 누군가에게도 그런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 그가 “누군가의 의식을 살짝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내 작업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내가 그림을 통해 세상이 모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듯이, 누군가도 내 그림을 통해 세상의 모순을 깨닫고, ‘왜 모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런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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