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민화 속 꽃그림, 패턴의 寶庫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민화 속 꽃그림, 패턴의 寶庫
  • 윤덕우
  • 승인 2022.04.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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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꿈 넘나드는 꽃의 세계
한국미는 소박한 백색의 미?
형형색색 개성·독창성 넘쳐
반복적 요소 현대미술과 접점
민화 속 패턴 조형적 언어 가득
꽃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고
우리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

바야흐로 봄꽃이 적당한 타이밍에 아주 흐드러지게 피는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의 구절처럼 정말 자세히 보고 오래오래 보고 싶은 꽃의 계절이다.

우리들의 패션에도 빈티지의 영향으로 꽃무늬 패턴이 화려하게 등장해 새로운 계절을 장식한다. 흔희들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꽃무늬 패턴이라는 말보다 ‘꽃 가라’라는 말이 유행했다. 꽃무늬란 뜻의 일본어인 ‘하나가라(花柄)’에서 ‘하나’대신 ‘꽃’이란 우리말을 대입한 조합어로 탄생되었다. 식민지 잔재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레트로(복고Retro) 유행 덕에 묘한 향수를 일으키는 용어가 되었다.

오늘은 이 꽃무늬 패턴, 꽃 가라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2018년 여름 갤러리 현대에서 민화와 관련된 획기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이름 하여 <민화 현대를 만나다(Flower Paintings from the Joseon Dynasty)>였다. 이 전시회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민화가 아닌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꽃무늬 패턴이 소개되어 많은 이들이 우리 조상님들의 현대적인 미적 감각에 새삼 놀랍고 큰 이슈가 되었다.

또한, 꽃 그림이 하나의 패턴을 이뤄 ‘한국미는 소박한 백색의 미’라는 잘못된 고정 관념을 깨뜨려 버렸다. 대략 나팔꽃, 모란, 패랭이, 작약으로 보이는 꽃무늬는 당장 옷이나 벽지를 만들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민화를 설명할 때 ‘도식화(圖式化)’한 그림이라 부르는 까닭은 개성 있고, 독창적인 그림 요소가 반복적이고 고정되게 그려졌기 때문인데 이 같은 특징이 오히려 현대미술과의 접점으로 보인다.

우리의 전통 그림에서 패턴은 주로 건물의 단청이나 직물이나 기물의 문양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미술과 궁중 미술, 그리고 민화는 ‘패턴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패턴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선사시대 토기나 청동기에 이미 기하학적인 문양이 보인다. 삼국시대에 와서는 식물의 넝쿨을 활용한 자연적인 패턴이 등장하고 더러 그 넝쿨 사이에 동물을 삽입하는 패턴이 보이기도 한다. 

화훼도4폭-갤러리현대
<그림1> 화훼도 4폭 작가 미상 19세기 제작 지본채색 54x65cm 일본 개인소장.
가로보다 세로가 약 10cm 밖에 길지 않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그림 4점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그림이 화면 맨 오른쪽에 있는 하늘색 꽃그림이다.

이 그림은 세트를 이루고 있는 나머지 세 작품과는 달리 나비나 벌 같은 곤충이나 새가 등장하지 않고 잎사귀도 없이 오직 꽃만을 흡사 연속무늬처럼 배치해 놓은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흔히 괴석, 토파, 수면, 화병 등으로 하단을 구성하고 줄기와 잎새와 꽃으로 메인 화면을 채운 화훼도의 일반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하단 부분을 완전히 생략하고 꽃을 연속무늬처럼 배치, 일정한 패턴을 지향하고 있다.
 

화훼도 1-갤러리 현대
<그림2> 화훼도4폭 중 일부 작가미상 19세기 제작 지본채색 54x65cm 일본 개인소장.

 

이 그림의 작가가 처음부터 멋진 꽃문양 패턴을 만들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짜고짜 꽃을 늘어놓아 패턴을 이루게 한 것은 아니다. 그림은 모두 세 그루의 꽃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의 나무는 두 개의 가지로 나뉘어 각각 여섯 송이와 일곱 송이의 꽃을 피워내고 있고 가운데 나무는 가지가 나뉘지 않고 길게 뻗은 하나의 가지로 이루어져 네 송이의 꽃을 수직으로 매달고 있다. 오른쪽의 나무는 두 개의 가지로 나뉘었다가 두 가지가 각각 다시 두 가지로 나뉘어 모두 다섯 개의 가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나무와 가지는 지나치게 가늘고 허약하게 그려진 나머지 화려하고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꽃에 가려 존재감이 거의 없다. 화면에는 온통 꽃만 보이는 것이다. 흡사 연속 꽃무늬를 그려 넣은 지금의 고급 포장지와 같은 느낌도 준다.

꽃의 모양도 사실적이지 않아 무슨 꽃을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도록에는 일단 나팔꽃으로 보고 있으나 독말풀이니, 감자 꽃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비단 이 그림뿐만 아니라 민화 화훼도에서는 꽃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실력이 서툴러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애초부터 실제로 존재하는 꽃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상상 속의 꽃일 경우가 더 많다. 여기 보이는 꽃도 그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민화 꽃그림에는 패턴의 조형적 언어가 가득하다.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는 패턴으로 이뤄진 그림이 있는가 하면, 설사 패턴이 아니더라도 패턴을 활용한 그림도 적지 않다. 꽃그림에서는 꽃의 크고, 작음 혹은 방향만 다를 뿐 같은 혹은 비슷한 모양의 패턴이 반복된다. 구름, 물결, 산, 땅 등 꽃의 주변에서 펼쳐진 자연도 패턴으로 표현된다.

’민화 현대를 만나다.‘편에 전시된 또 다른 화조화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민화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모란의 모습이 화면에 대칭적으로 나열되어 있고, 그 사이에 새들이 조그맣게 깃들었다. 도대체 이런 발상이 어디서 나왔을까? 모란의 줄기와 가지와 꽃을 마름모형의 틀 속에서 재구성했다. 아주 작은, 그래서 오히려 상징적으로 보이는 땅덩어리에서 사선 방향으로 먹색의 줄기가 뻗어나고 그 줄기에서 직각 방향으로 녹색의 가지들이 전개된다. 다시 이 가지에서 직각 방향으로 더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면서 마름모 모양의 얼개를 만든다. 대개 모란도를 보면 화려한 모란꽃에 집중하지 이처럼 땅에서 시작하여 꽃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얼개로 표현한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구성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케 한다. 꽃과 꽃잎도 패턴을 활용하여 표현했다. 유사한 형상의 꽃과 꽃잎이 크기만 다를 뿐 일정한 패턴을 크기로 조정하고 약간씩 변화를 줬다. 어쩌면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과도 같은 느낌인데 가장 졸박한 것이 가장 큰 기교라고 설파한 장자(莊子 B.C369년?-B.C 286년)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최근에 이러한 민화의 패턴을 새롭게 해석한 작가가 있다.

2020년 1월 ‘민화 속 나의 라임나무오렌지’를 표현한 박영희 작가이다.

영희의 꿈6
<그림3> 박영희 작 2019년 <영희의 꿈 6> 한지에 분채 91x73cm 작가소장.

한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피어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로 보여 진다. 작가는 고민도, 슬픔도 없는 안식처를 짓고자 나무를 심었으며 싱그러운 새싹처럼 희망이 퐁퐁 솟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초록빛 새들을 나뭇가지에서 틔워냈다. 듬직한 나무 곁에서 꽃과 새를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웃고 떠들고 더러는 눈을 잠시 붙이기도 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더욱이 각박한 현대인들의 삶 속에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으로 분화하는 이상적인 꿈의 세계로 풀어나갔다. 이제 민화는 그만큼 민화가 포용하고 있는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넓혀 가고 있다. 민화의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한다. 사람들은 꽃을 우리와 같은 인격체로 인식하고, 꽃의 세계를 통해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어머니 세대의 ‘꽃 가라’를 생각하다가 예전에 가수 백설희가 불렀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까지 읊조리게 되었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 속의 봄날이 현재진행형으로 지나가던 때는 1953년, 봄꽃이 만발했다가 흐느적거리면서 지던 때이다. 6·25전쟁 직후 1953년 대구에서 백설희가 발표한 봄의 서정 가득한 노래이고, 지금이 딱 그 노래의 배경화면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분홍 치마도, 새파란 풀잎도, 열아홉 시절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다시 꽃이 피고, 별이 뜨고 새가 날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아쉽게 떨어지는 봄꽃의 조각에 아쉬움보다는 또 다른 기대를 품게 되었다.

봄은 가지만 또 다시 봄은 오니까…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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