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네 얘기를 듣고 싶어
[달구벌아침] 네 얘기를 듣고 싶어
  • 승인 2022.04.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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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사람은 모두, 다른 듯하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닮았다. 그중 하나가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즉,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루는 밥을 먹으며 유재석,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라는 TV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두 MC가 길거리로 나가서 시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후 마지막에 퀴즈를 통해 출연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본 그날은 특별히 유퀴즈 100회 특집으로 길거리로 나가지 않고 특별한 손님들을 촬영 현장으로 모시고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의 초대손님 중 국내 1호 '위기 협상 전문가' 이종화 대표의 이야기가 지금도 내 속에 울림이 되어 남아 있다.
이종화 대표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대표는 2006년 미국 FBI 교육을 수료하였고, NYPD(뉴욕경찰, 인질 협상 기법을 처음으로 경찰에 도입)에서 위기 협상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는 국내 협상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 경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아주 귀한 인재였다. 그의 말을 빌려보면 인질극 현장에서 인질이 다치는 경우는 인질범에 의한 것보다는 경찰이 인질을 구출하러 들어가다가 경찰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다친다고 했다. 이러한 결과 때문에 경찰에서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든 직업이 '인질 협상관'이라는 직업이다. 뉴욕경찰 협상관 옷에 이런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고 한다. "Talk to me 내게 얘기해" 즉 이 말은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이야기를 들어줄게 라는 뜻이다. 위기 상황의 협상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실제적인 해답을 찾은 것이다.
MC가 이 대표에게 물어봤다. 극도로 흥분한 가해자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가라앉힐 수 있을까요? 비결을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정말 실전의 경험이 풍부한 '찐 전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위기 상황의 협상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진정하세요." "이해합니다." "나오세요"라는 말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기본 상식을 완전히 깨는 이야기였다. 금기어 중 첫 번째 '진정하세요'라는 말보다는 감정을 인정해주는 말로 바꾸어 말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자칫 진정하란 말은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인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진정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마디 말로 진정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대표는 그래서 '진정하세요'라는 말보다는 '많이 화가 나 보이시네요'라는 말을 해 주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화나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고 있으니 더 이상 화를 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화는 차츰차츰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금기어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이 대표는 영혼이 없는 말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복잡하고 오래된 그 사건과 감정을 이해한다는 말일까. 이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이해합니다'라는 말 대신 "듣고 싶어요"라는 말로 바꿔주라고 한다. 즉, 무슨 사연이 있는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람이 나의 감정과 고민을 듣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것이 전달되면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너무나 핵심을 잘 잡아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금기어 '나오세요'라는 말은 인질범이나 자살시도자에게 해결책만 제시하려고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고민 따위는 관심 없고 네가 원하는 것은 내가 나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한다. 나오세요라는 말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로 바꾸라고 한다. 이 대표는 위기 협상이 필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자신의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건드려 주는 사람과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위기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모두는 위기 협상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 '이해한다'라는 영혼 없는 이야기보다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라는 말을 해주자. 그러고 나서 진심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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