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한국사회에서 초자연적 호러가 번성하는 이유
[대구논단] 한국사회에서 초자연적 호러가 번성하는 이유
  • 승인 2022.04.17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봄을 지나 이제 초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 여름이 되면 예전에는 호러(공포)영화가 늘 한두 편씩 개봉되어 등골이 오싹하게 더위를 식혀주곤 했다. 지금은 그런 공식이 사라졌는지 호러영화나 호러드라마가 계절 구분 없이 개봉되곤 한다. 최근 뚜렷하게 유행하는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중 하나는 초자연적 괴물이 등장하는 호러스토리다. 과거 ‘장화홍련전’‘월하의공동묘지’‘여고괴담’‘알포인트’ 등의 호러스토리가 어쩌다 한 번씩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면, 최근에는 ‘부산행’‘곡성’‘지금우리학교는’‘검은사제’‘지옥’ 등 그 어떤 장르보다도 공포스토리가 확연히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소수 매니아들의 장르에서 벗어나 현재는 대중적인 장르로서 초자연적인 호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면 호러는 한국사회에서 왜 이 시점에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

호러스토리의 유행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을 가지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호러가 활기를 띠는 이유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이론 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한지 즐겨보시라.

초자연적 호러가 유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첫 번째는 이론은 “호러싸이클”이다. 이 이론은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 호러장르가 유행한다고 주장한다. 호러 장르의 특수성이 두려움이나 걱정에 있기 때문에 불안함이 높은 시대에 걱정거리를 표현하며 호러가 번성한다는 것이다.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시대(전쟁 패망 후에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독일사회)에 독일의 호러영화들이 번성했으며, 미국에서는 대공황시기와 1950년대 냉전 초기 시대에 호러영화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유행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의 호러영화들은 미국에서 국제 공산당 위협의 공포를 외계괴물의 침입 스토리로 표현하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호러싸이클이 사회적 스트레스의 시기에 나타나며 이는 호러스토리가 그 시기에 만연하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극화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호러싸이클 이론을 뒤집어 보면 태평시대에는 근심 걱정이 없기 때문에 호러도 번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호러싸이클 이론을 현재 한국사회에 적용한다면 한국에서 호러가 유행하는 이유가 현재 한국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근심과 걱정거리가 많고 스트레스가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은 저출산, 청년실업, 학벌, 수도권집중, 부동산, 미세먼지, 코로나 등 엄청난 스트레스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인구가 급격히 줄어 소멸의 한국사회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의 시대니 공포감을 퍽퍽 불러일으키는 호러에 사람들이 모두 눈길을 돌리고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초자연적 호러가 성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번째 이론은 ‘과학지식의 발전과 호러’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초자연적 호러스토리가 과거 이집트, 로마시대 등에서도 간헐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본격적인 등장은 18세기 영국과 독일의 고전소설에서 호러가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된다. 이 시기는 신이 중심이었던 중세시대가 끝나고 과학(이성)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계몽시대이다. 신이나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도대체 무엇이 초자연적 현상인지 몰랐기 때문에 허구적 재미를 주는 소스로서 초자연적 호러스토리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중세에서 벗어나 18세기에 이르러 뉴튼이 설명하는 과학적 자연관을 갖게 된 유럽인들은 허구적 존재로서 ‘프랑캔슈타인’이나 ‘드라큐라’를 만들어 오락거리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에 의하면 과학 지식이 발전한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은 호러스토리가 대중의 오락거리로 집단적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현재가 가장 과학적으로 발전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인공지능, 반도체, 로봇, 가상현실 등 과학적 관심으로 심취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과학적 지식과 신념이 발전하며 초자연의 호러 스토리를 엔터테인먼트의 꿀단지로 인식할 수 있었듯이, 현재 과학적 신념으로 무장한 한국도 허구로서 다양한 괴물들의 스토리가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원천임을 발견한 듯하다.

과학을 통해 전능한 존재로서 인간이 우주에 우뚝 설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희한하게도 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초자연적 괴물인 좀비, 사탄, 귀신, 흡혈귀, 저승사자 등이 번성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과학적 신념이 현실을 이끌고 있다면, 호러스토리의 초자연적 괴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의 오락적 일상을 달래는 도구로 번성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