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형상과 ‘생명’ 관념 결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은유
면 보다 선…동양적 요소 강해
먹·목탄·펄프가루 등 물성 다채


물결의 부드러운 몸짓인가 싶으면, 여체(女體)의 에로티시즘 같다. 작가 김진영의 작품세계인데, 그녀는 “꽃잎의 유영”이라고 했다. 김 작가의 전매특허 ‘화몽유영(花夢遊泳)’이다. ‘자유를 꿈꾸는 꽃의 꿈’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작가는 ‘꽃잎’의 형상에 ‘생명성’을 대입해 놓았다. 시각적인 형상과 추상적 관념이 결부된 전형이다. “생명의 일생을 3가지 꽃잎의 형상에 비유하여 표현해 보왔어요.”
김진영 개인전이 19일부터 24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층 3전시실에서 열린다. 생명의 일생을 정중동(靜中動)에 빗댄 3가지 유형의 ‘화몽유영’ 연작 10여점을 건다. 생명의 씨앗을 형상화한 덩어리인 정(靜),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존재의 일생을 활짝 핀 꽃잎에 빗댄 중(中), 씨앗이 실체가 되기 위한 여정을 형상화한 물결무늬의 동(動) 등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3가지 개념은 한 장의 꽃잎으로부터 출발했다. 5년전 즈음에 화면 중앙에 그윽하게 꽃잎 한 장을 그리고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의 일생’을 은유했다. ‘화몽유형’ 초기작이었다. 정중동(靜中動)은 꽃잎 한 장의 개념적 확장이자 시각적 변주에 해당된다.
이번 전시에서 본질로서의 생명, 본질이 형태를 얻어 하나의 존재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현실로 구현된 온전한 생명체 등 다양한 생명의 기운으로 개념적인 확장을 시도했다.
내면이 한 뼘 성장하는 순간은 대개 어둠의 터널을 통과할 때다. 추상에서 반구상인 꽃잎으로 작품 세계가 변화를 시작한 것은 5년전. 그의 인생이 큰 고난에 직면했을 때이자 내면에서 태풍이 휘몰아치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는 평생 곁에서 지켜줄 것 같았던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주의에 빠졌어요.”
어머니와의 이별로 슬픔이 삶을 잠식해 올 때 노자와 장자를 만났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만 선지자들과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노자와 장자를 만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무욕(無慾)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 어머니의 죽음 또한 자연의 순리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깊이를 알 수 없었던 슬픔은 잦아들었다. 그때 캔버스에 꽃잎 한 장이 소담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다. 작품 ‘화몽유영(花夢遊泳)’의 탄생이었다.
꽃잎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도록 이끈 요소 중에서 성(性) 정체성도 빠트릴 수 없다. 생명을 잉태하고 그것을 온전한 존재로 키워내야 하는 여성의 삶을 스스로 살아오면서 생명의 신비에 눈을 뜨게 됐다. 그것은 경험이 준 선물이었다. 인식이 경험의 산물임을 전제할 때 그녀는 철저하게 경험론자에 속했다.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 환하게 피어났다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시들어가는 모습 속에서 여인의 삶과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물이 흐르는 듯 한 형상은 코로나 19가 준 의외의 결실이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삶이 단절되자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욕망의 화신으로 괴물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했고,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과 무절제한 행동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창궐을 불러왔다”는 진단을 내리게 됐다. 당시 노장사상의 자연관을 새삼 재인식하게 됐고, 순리에 따르는 자연의 섭리를 회복하는 길만이 살길 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섭리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자연의 일생을 다시금 회복해야 다시는 코로나 19 대유행같은 같은 환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꽃잎의 유영은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고 같은 것이죠.”
활짝 핀 꽃이나 꽃잎의 유영에서 강인한 생명의 역동성을 경험했다면 본질의 영역을 다룬 절제된 덩어리 형상에선 지극한 고요로 빨려 드는 착시를 느낀다. 한 작가가 정중동(靜中動)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쉬울까 싶지만 그는 전혀 다른 경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배우가 배역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는 것과 그녀의 감정 전환이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사유가 이끈 경지였다.
“이것이 흩어지면 저것이 되고, 저것이 모이면 또 이것이 되는 이치를 깨우치게 되면 한 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존재의 상태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작업의 개념적 토대는 동양사상을 따른다. 하지만 표현법에서는 동서양을 넘나든다. 한지와 캔버스를 동시에 사용하고, 먹과 물감의 혼용에도 막힘이 없다. 하지만 자유로운 표현법과 달리 화면 속 기운은 일관된다. 지극히 동양적이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력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양철학을 사유의 기반으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면(面)보다 선(線)적인 요소에 강한 동양미술의 전통이 그의 화면에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최소한의 형상을 추구하지만 물성은 다채롭게 열어둔다. 목탄이나 펄프가루에 접착제를 섞은 혼합제를 활용하여 충분한 마티에르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물성으로부터 열린 태도의 일환이다. 그만큼 물성은 그의 회화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념적으로 추구하는 ‘생명성’을 마무리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물성을 바라보고 있다. 목탄이나 펄프가루 등은 그가 발견한 사유의 세계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다.
“정신적인 세계가 물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미술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유에 좀 더 근접하는 재료를 찾는 것은 작가의 숙명이에요. 철학과 물성이 동시에 깊어지는 정직한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에 끊임없이 물성을 연구하는 것 같아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