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봄
[달구벌아침] 봄
  • 승인 2022.04.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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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4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봄을 제일 좋아한다. 겨울은 겨울대로 즐거웠고,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 있어 아름다웠지만 잠시뿐이었다. 봄은 어느날 갑자기 바람을 타고 홍희 마을로 왔다.

봄바람 났냐고들 말을 하는 그 봄바람은 못둑아래에서 못둑위로 살랑살랑 머리카락을 날린다. 초등학교때 오후 3시쯤 집으로 올 때 못둑에서 부는 봄바람은 ‘심쿵’하다. 홍희의 가슴속을 간질이는 것처럼 간질간질거리며 웃음이 살짝 입가에 맴돈다. ‘파’하고 터트리는 웃음도 아니고 ‘하하호호’ 경쾌한 웃음도 아니고 ‘ㅋㅋㅋ’ 키득거리는 웃음도 아니다. 살그머니 가슴속에서 참을 수 없이 솟아나는 웃음이다. 마치 봄에 흙속에서 연두 새싹이 쬐금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집에 가면 엄마, 아버지는 안 계시고 할머니만 오도카니 방문 앞에 앉아 있다. 홍희를 기다리며 봄날 오후에 방문을 열어 젖히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할머니가 계신다. 말수가 많지는 않지만, 쪼그라든 손으로 홍희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할머니의 정이 느껴진다. 봄볕을 쬐고 계시는 할머니는 화사한 얼굴이다. 봄햇살이 할머니 얼굴을 환하게 해주었다. 겨울이면 시커멓던 엄마의 얼굴도 봄에는 생기가 돋는다. 봄은 참 희한하다. 겨울에는 보지 못하던 얼굴을 홍희에게 보여준다.

홍희는 할머니를 따라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따라 나선다. 봄햇살이 좋으니 땅 속에서 쑥이랑 달래가 올라와 있어 봄나물을 캐러 가는 것이다.

“봄”이 왜 봄인지 알 것 같다.

겨울에는 죽어 있는 것 같은 땅 속에서 쑥 하고 올라온 쑥 새싹을 본다. 누렇게 말라 있는 논둑에서, 마른 논둑을 태워서 시커매진 잿더미 속에서 쑥하고 올라와 있는 새싹을 본다. 겨우내 얼어있던 밭에서는 냉이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본다. 마른 나뭇잎만 달랑달랑 거리던 빼빼마른 나무도 연두색 아기 손같은 새싹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본다. 얼음이 얼었던 못에서는 물고기랑 올챙이가 헤엄치는 것을 본다. 겨울에는 보지 못 했던 많은 생물들을 보는 계절, 보았다 본다의 명사형 “봄”이다.

나 죽지 않았다. 나 살아있다. 나를 보아라. 차가운 겨울바람에 땅속이 얼어붙어도 내 뿌리는 살기 위해 애를 썼고 살아내었다. 나를 보아라.다시 시작한다. 푸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를 보아라.

그들을 본다. 범어네거리에서 빨갛게 제일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을 본다. 법원 뒤 야시골에 오르면 노랗게 손을 흔드는 산수유를 본다. 그 옆에 노란 잎을 오므리고 자기들이 나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개나리를 본다. 일주일 후에는 노랑병아리 입마냥 삐죽삐죽 펼쳐진 활짝 핀 개나리를 본다. 어느 틈엔가 벚꽃이 연한 분홍색을 팝콘마냥 터트린 것을 본다. 벚꽃이 무리지어 있는 아양교 벚꽃 터널 아래를 걸으며 벚꽃으로 둘러싸여 꽃바구니같은 나무 위의 새집을 본다. 둑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 나무에서 연한 연두색 엉킨 나뭇가지를 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펼쳐지는 산에서 몽글몽글 거품마냥 동그란 연두색 솜사탕을 본다. 다 살아있다. 다행이다.

그들을 보는 “봄”이다. 그들을 보는 나도 살아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올해는 왜 그리 꽃들이 더욱 아름다운지. 작년에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웠을 것인데, 올해 더 미친 듯이 보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봄.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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