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시련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보내는 작은 글
[치유의 인문학] 시련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보내는 작은 글
  • 승인 2022.04.2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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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치유의 인문학 3번째-‘괜찮아 놀아도 돼’ 글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전화와 문자를 주셨다. 응원의 메시지에서부터 공감의 메시지까지 모두 힘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모두 삶의 빛깔이 닮았다는 위로를 받은 하루였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한 분이 보내주신 문자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쉴 수조차 없다는 문자…. 어쩌면 오늘 ‘시련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익명의 그를 위한 치유의 글이 될 수도 있겠다.

2010년 구제역 광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전국의 수 많은 가축들을 살처분하게 했던 아픈 기억, 그 기억 속에 내 이웃집 할아버지께서 키우던 누렁이 소도 있었다. 구제역이 가축들의 호흡기를 통해 병균이 전파되는 특징이 있어 반경 5km 내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가축들을 산 채로 매장했다. 보건당국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당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대형 트럭에 실린 소와 돼지들은 살처분 현장으로 향했다. 공포에 질린 가축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유 없는 살처분! 아비규환의 상황에 가축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살길은 절규였다. 그 소리는 컸고 길었으며 절절했다. 당시 현장을 감독했던 공무원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걸렸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그 절규는 사람들을 좌절시켰다. 그래서 공무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덜어주기 위해 석시콜린이라는 강력한 신경계 마취제를 처방했다. 그 처방은 소리 없이 가축들을 살처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석시콜린 한 번의 주사로 600~800kg 소들은 짧으면 5초, 길면 10초에 의식을 잃었다. 그토록 강력한 마취제였다. 그렇게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살처분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강원도 살처분 현장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들이 길어봐야 10초면 모두 의식을 잃는데 유독 어느 소 한 마리만 1분을 넘게 버텼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어미소의 모정’이라는 제목에 작은 소가 그려진 삽화 한 장의 기사는 그렇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울리고 있다. 삽화에 이끌려 강원일보에 실린 이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읽고 나서 왜 기사의 제목이 ‘어미소의 모정’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농장도 다른 지역과 똑같이 살처분을 하고 있었다. 어느 암소에게 석시콜린을 주사하고 다른 소에게 이동하는데 그 암소가 의식을 잃지 않더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버틴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 모습을 본 보건 당국자가 자신의 주사기에 약물이 비었는지를 확인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단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원인을 찾던 도중 새끼송아지가 어미쪽으로 비적거리며 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 새끼송아지 때문이었구나!”

작은 탄식이 나왔다. 그제서야 어미소가 버틴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소들이 길어봐야 10초면 혼절하는데 그 소는 젖을 먹기 위해 다가오는 어린 송아지를 위해 절대 의식을 잃을 수 없었다. 아니 끝까지 버텨야만 했으며 결코 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10초… 20초… 30초를 견디며 결국에는 1분 45초를 견뎌냈다. 그렇게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다 먹인 후 어미소는 어린 송아지가 가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기적이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보건 당국자는 그 어미소의 모습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사연을 강원일보에 제보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기자도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썼다는 이야기다. 12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필자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인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다가와도 살아야 할 분명한 ‘삶의 의미’와 ‘생존의 이유’가 명확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큰 울림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빅터 플랭클이 만든 실존주의 치료는 바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치료법이다.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의미치료는 지금껏 필자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치유의 힘이다. 12년 전 구제역 현장에서 보여준 강원도 어미소의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그래서 생각보다 크다. 조용히 묵상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라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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