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소심해서 좋아
[달구벌아침] 소심해서 좋아
  • 승인 2022.04.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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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작은 가슴 / 가슴마다 / 고운 사랑 모아 / 우리 함께 만들어 봐요 / 아름다운 세상"

남성듀오 유리상자의 노래 '아름다운 세상'의 노랫말 중 일부다. 난 이 노래를 참 좋아한다. 강의 때도 사용하고, 평상시에도 즐겨 부르기도 하고, 즐겨 듣기도 한다.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노랫말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웅 같은 사람의 힘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늘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 배짱 있고 대범한 사람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런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꿔 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꿔 온 사람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하며, 겁 많고 걱정 많은 사람들 즉, 소심한 작은 가슴들이 하나씩 모여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소심하기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피식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말이 잊히지 않고 저녁이 되어도 계속 생각났다. 계속해서 생각나는 걸 보니 그의 말대로 나는 소심한 사람이 맞았다. 그래 인정. 혈액형으로 나의 소심함을 한번 보자면 나는 혈액형 중에도 소심하기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A형이다. 그것도 A형 중에서 더 소심한 소문자 a형이다. 그래도 상처받기 싫어서 캡슐로 덮어 씌운 골뱅이 @형까지는 아니라는 소심한 방어를 해본다.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으니 싱거운 농담 하나 해 보자.

A형, B형, O형, AB형 각기 다른 혈액형을 가진 친구 네 명이 오랜만에 만났다. 식사를 한창 하고 있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AB형의 친구가 밥을 먹다 말고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겨진 친구 세 명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AB형을 따라 누군가 밖으로 한 명이 나갔다. 누구일까? 바로 행동파 O형이다. O형은 "친구야 왜? 무슨 일이야?"하면서 먹던 밥을 두고 친구를 따라 나갔다. 이제 남겨진 사람은 두 사람이다. B형과 A형. 그렇다면 B형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B형은 먹던 밥을 계속 먹었다. "쟤들 무엇 때문에 저러는데?" 그리고 마지막 A형. 걱정스러운 눈 빛으로 소심하게 하는 말은 "혹시 나 때문에 저러나?" 역시 A형답다. 다른 혈액형은 모르겠고 최소한 A형의 반응은 A형인 내가 보기에는 맞는 것 같다.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적절히 잘 표현한 것같아서 강의 때도 한 번씩 사용하는 유머이기도 하다.

그래 나는 A형이라 그런지 몰라도 소심하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그냥 쉽게 넘어가 지지를 않는다. 그물로 치자면 그물망이 아주 촘촘한 그물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것들은 다 나의 그물에 걸리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심함이 좋다. 예전에는 이런 소심함 때문에 신경 쓰이고 싫었는데 요즘은 이 소심함이 좋다. 잡초도 예쁘게 보면 꽃이듯이 나의 이 소심함도 예쁜 눈으로 보니 좋은 점이 몇 가지 보인다.

내가 소심함으로 인해 좋은 점 첫 번째,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냥 넘어갈지 모르는 타인의 감정을 나는 잘 캐치한다. 그냥 쓰윽 지나갈 것인데 그 감정이 나의 레이더망에는 잘 걸린다. 바로 소심함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상대방의 기쁨을 함께 잘 느끼는 편이라 관계적인 면에서는 큰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두 번째, 소심해서 좋은 점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소심하다 보니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냥 쉬이 지나치는 경우가 드물다. 사소한 것이 글감이 되고, 사소한 것에서 생각을 곱씹다 보니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많다. 소심해서 좋은 점 세 번째는 길을 걷다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잘 찾아내고 잘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어려운 사람이 보인다. 길가에 누워있는 사람, 멈춰있는 차.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발견한 적도 있고, 위급한 사람을 살린 적도 있다.

좋게 보자면 한 없이 좋아 보이고, 나쁘게 보자면 한 없이 나쁘게 보이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긍정과 부정의 모습 중 긍정에 눈을 돌려보자. 그러면 의외로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장점이 되는 경우가 꽤나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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