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이 자식들이 유산을 지키는 방법
[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이 자식들이 유산을 지키는 방법
  • 백정우
  • 승인 2022.04.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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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좋지아니한가
 

공직에서 퇴직한 창식. 아내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을 못한다. 혼자서는 돌보기 힘들어 간병인을 고용했다. 조선족이다. 간병인 월급은 딸이 지급한다. 어느 날 아내에게 욕창이 생겼다. 심혜정 감독의 ‘욕창’은 노년부부의 삶에 끼어 든 질병과 타자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은 낯선 대상이 촉발시킨 추악한 욕망과 가족의 오랜 상처를 보여주며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성실하고 붙임성 좋은 조선족 간병인과 창식 사이에 균열이 생긴 건 아내의 욕창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간병인의 잦은 외출에 불만과 의심이 커져가고, 간병이 필요한 부모와 돈을 지불하는 자식의 틈은 점차로 벌어진다. 등에 욕창이 생겼다는 건 간병인이 의무를 소홀했다는 얘기.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이끈다. 급기야 간병인을 미행하고 손찌검까지 한다. 용서를 구한 끝에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지만 이번엔 간병인의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문제다. 이들 가족 마음에 잠복한 욕창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혼자서는 아내를 돌 볼 수 없는 창식은 위장혼인신고로 간병인을 집에 머무르게 할 생각이다. 엄마를 돌보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 자식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차라리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는 말에 “엄마가 요양병원 가면 나는?” 자식들이 걱정하는 건 법적 부인이 된 간병인이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독차지할 수도 있는 끔찍한 미래다. 계획을 갖고 아버지를 꼬드겨 이 상황까지 왔으니 반드시 그리 될 거란 확신이다.

엄마의 간병과 아버지의 삶은 뒷전으로 밀리고, 유산을 둘러싼 상상이 난무하면서 각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그런대로 평온했던 가족은 아수라장이 된다. 자신과 아내를 위해서 간병인이 필요한 아버지와, 불만 가득한 장남과, 조선족 간병인에게 월급도 주고 언젠가 유산까지 빼앗길 거라 여기는 딸이 벌이는 삼각전투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80대 노인이 욕창과 코로나 감염으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일이 있었다. 전문적인 치료시설과 인력을 갖춘 요양병원에서 이 상태가 되도록 방치했다는 건 요양보호사와 간호사와 의사가 소홀했다는 게 가족의 주장이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선 2시간 마다 체위변경을 해야 한다. 잦은 환기와 에어 매트리스로 환자 몸에 가해지는 압력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진짜 중요한 건 환자를 바라보는 병원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즉 병원의 운영 방향에 따라 종사자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 ‘욕창’은 비윤리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부모와 돈을 지키려고 가장 나쁜 방법을 동원하려는 이기적 자식세대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골을 보여준다. 엄마의 욕창은 수시로 몸을 뒤집으면 방지할 수 있지만, 정신과 마음에 생긴 욕창은 회생 불가능하다는 것. 누군가의 신고로 출입국관리소직원에게 잡혀가는 간병인의 발버둥과 아스팔트를 구르던 과일과 가스레인지 과열로 연기 자욱한 방안 허공을 휘젓는 창식의 모습...(fade out)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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