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국내서 30여년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 72점 전시
6월엔 獨 루드비히 미술관서
광물질 본성 스스로 드러나게
결과가 의도와 달라도 ‘완성작’
작품-전시공간 서로 하나돼야
용해 작업에 전문가 조력 받아
비예술가와 협업 순수성 확보
조각 통해 재현 보다 창작 희망

인간은 거대한 문명을 이룩하며 스스로 절대자인양 착각한다. 더 편리하고, 더 부유해진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스스로 유토피아마저 건설할 수 있다고 자만한다.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와 수많은 생명체들의 멸종을 지켜보면서도 욕망을 멈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프랑스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는 윤희 작가의 작업들은 파괴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오만함과 대척점에 있다.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관장 석은조) 에서 진행되고 있는 윤희 개인전 제목은 ‘non finito(‘논 피니토·미완성)’. 세상을 이해하는 그의 시각을 이번 전시 제목에서 명료하게 포착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정의를 작가의 내면상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실이라고 내린다면, 윤희는 자신의 내면보다 물성의 향방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자신과 물성과의 역학관계를 주종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설정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보다 물성의 이야기에 귀를 활짝 열어 둔다. 물성의 자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상생과 겸양을 미덕으로 여기는 작가의 세계관과 관계된다.
◇ 물성의 본성을 존중하는 조각 추구
작업은 작가중심적인 행위다. 촘촘하게, 또는 느슨하게 그려놓은 ‘설계도’에 따라 작업이 진행된다. 설계도 없이 작가의 순간적인 행위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작업들도 존재하지만, 그 또한 작가의 의식이나 무의식에 기댄다는 점에서 작가중심적인 작업의 범주에 포함된다.
물성의 향방을 존중하는 윤희의 작업방식은 작가중심보다 물성중심에 가깝다. 작가의 의도를 바탕으로 시작하지만 진행될수록 물성의 향방이 이끄는 대로 작가가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완결로 확정되는 시점의 결과 또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의 의도와 비껴나 있다. 작가는 이 상태를 완성된 상태라고 확신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개인전의 제목인 ‘미완성’은 은유적인 표현에 가깝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설계도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물이지만 “미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윤희 작가는 광물질을 매개로 세상을 이해한다. 청동, 황동, 알루미늄 등의 광물질 덩어리에 가공과 생성의 행위를 더해 “물질 스스로 본성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한다.
작가와 물성과의 역학관계는 굳이 따지자면 상호협력적이다. 물성을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하위 단위로 보는 대신, 물성의 자발성을 인정하고 물성 스스로 본성을 찾아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 금속 덩어리에서 용해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세계 표현
그의 작업에 사용된 첫 물성은 금속 파편이었다. 산업현장을 다니며 작업의 재료에 부합하는 금속 파편들을 수집한 후 갈고 닦는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완성했다. 대개 작가가 두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는 규모여서 작업 초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덩어리를 들고 옮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이 상했다. 허리디스크였다.
몸으로 옮겨야 하는 재료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묘수를 찾아 나섰다. 그때 번뜩인 것이 ‘거대한 금속덩어리’였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덩어리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몸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결점이 없지는 않았다. 거대한 규모가 작가가 재료를 자유롭게 다루는데 한계로 작용했다. 그가 낸 묘수는 자연을 연상케 하는 형상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재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토리를 일정부분 소화하려는 의도였다.
일반적으로 작업의 종료는 작가적인 행위의 마무리로 인식하지만, 윤희 작가의 작업은 작업이 마무리 되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전시장에 작품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더욱 활성화된다. 재료를 채집할 시점에서 재료가 가진 형태에서 스토리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작가는 작품과 전시장의 관계를 통해 스토리를 극대화해간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작품과 전시공간이 마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주는 것 또한 작업의 연속이라고 믿으며, 전시장에 작품을 전시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조각과 공간이 서로 감응해서 서로 하나인 것처럼 되기를 바랐어요. 조각과 공간이 서로 기운을 주고받으며 고유한 기운을 만들고, 관람자가 그것을 관조하도록 하는 것이죠.”
◇ 쇳물 작업에서 물성 존중하는 작가 정신 최고조에 달해
윤희의 전매특허는 2000년대부터 시작된 용해작업이다. 금속재료 수집이 어렵게 되자 금속을 녹인 액체를 대체재로 채택했다. 80년대 초반, 다양한 물성을 연구하던 시기에 액체에 대한 탐구가 있었고, 그 경험을 기초로 2000년대에 용해 작업을 본격화했다.
용해작업은 광물질 덩어리를 800~1천200℃의 고온에서 녹인 후 액체 상태로 힘과 방향·속도·양을 조금씩 달리하는 방식으로 의도성 없이 던져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굳게 하는 작업이다. 재료의 한계 때문에 채택된 방식이었지만 작품으로서의 효과는 의외로 드라마틱했다. 액체가 가지는 높은 가변성과 즉흥성이 작업의 무한변주로 이어진 것. “액체를 던지는 조건이 매번 다르고 온도나 바람도 달라서 작품마다 형태나 표정이 다 다르게 나오게 됩니다.”
즉흥성과 가변성을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액체라는 특수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액체를 부을 때 역할을 하는 기본 틀인 원추 또는 원형의 주형(鑄型)도 한몫한다. 그는 주형을 아주 단순하게 설계한다. 액체가 던져져서 흘러내기는 순간까지 잠시 몸을 기댈 수 있는 용기 정도로만 틀을 제한한다.
이 경우 용액의 움직임은 보다 자유롭게 되고, 작업의 전이는 가속화된다. 물성이 자유롭게 본성을 따라간 작품들은 유일무이한 형상으로 존재감을 발하게 된다. “액체 작업은 조각을 즉흥적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물성 존중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벽에 던진 후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져 굳은 덩어리까지 작품으로 수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액체를 던지는 방식에서 어느 정도의 의도는 가해지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어긋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창작의 시발점이 되고, 작가에게는 더 큰 재미로 다가오죠. 그런 과정들이 작품에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액체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와의 협업 또한 윤희 작업의 특수성이자 즉흥성과 가변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작가가 뜨거운 액체를 직접 다룰 수 없어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작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마다 용액을 던지는 힘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어 작업의 전이를 높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작가는 비예술가와의 협업에서 더 높은 순수성의 확보도 경험한다. “비의도적이고 순수한 작업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작업의 개념적 기반은 ‘물성의 본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물성이 스스로의 본성을 찾아가도록 작가가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 금속 덩어리 작업에서는 작가의 조각적인 행위를 최소화하고 공간과의 관계 맺음에 집중하고, 액체 작업에서는 액체가 흘러가려는 방향을 최대한 존중했다.
“물성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우연하고 즉흥적인 효과들을 수용했을 때 형상의 전이가 더 활발해지는 것을 매 순간 경험하게 됩니다.”
◇ 수행적인 평면작업도 병행
평면 작업도 병행한다. 직접 개발한 안료로 즉흥적으로 그린다. 마치 먹물이 우러나는 것처럼 표현된 작품인데, 금속덩어리나 액체 작업에 비해 정적(靜的)이다. 그는 평면 작업은 “평면 작업 할 때면 먹을 갈 때처럼 평화로워진다”며 “평면 작업은 보다 수행적”이라고 언급했다. ‘본성의 자성을 인정’하는 개념은 평면 작업에도 견지된다. 작가는 “용해 작업은 조력자와의 협업이지만 평면작업은 혼자만의 작업이어서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면서도 “물성의 자성을 따르는 개념은 동일하다”고 했다.
조각은 행위의 산물이다. 행위를 통해 물질의 변화를 이끈다. 윤희는 행위에서 의미가 발현된다고 믿는다. 던지거나 연마하거나 등의 작가의 행위로 물질에 기운이 스며들고, 행위로 완성된 형상은 곧 정신의 결정체가 된다는 것. 그는 조각을 통해 재현보다 창작하는 예술가이기를 희망한다. “작가의 행위와 물성의 본성이 같이 가는 것, 이것이 조각의 본질이다.”
작품 똑같은 원뿔 모양의 틀에 만들어진 ‘Les Trois Ombres(세 그림자)(2003)’, 열린 주형으로 탄생한 ‘세 그림자’, 서로 모이거나 흩어져있는 72점의 구체 형상으로 구성된 ‘non finito(미완성)(2018-2021’ 등 작가의 초창기 1990년대 작품부터 최근 드로잉, 조각 작품까지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당뮤지엄 전시는 7월 10일까지며, 6월에 독일 코블렌츠(Koblenz)의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