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동양천문학 온전히 구현한 세계 유일 도시, 달구벌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동양천문학 온전히 구현한 세계 유일 도시, 달구벌
  • 김종현
  • 승인 2022.05.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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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동트는 달구벌, 별까지 쏟아진다네
신가유신라호국성
신라시대 천문학에 의한 8괘진 호국성 도시 달구벌. 그림 이대영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구현한 달구벌

 

오늘날 도시계획으로 입증 가능
도시철도 1호선은 ‘태양의 길’
2호선 ‘오행성 길’ 3호선 ‘삼원의 길’

조선시대 제왕들도 천기를 통해서 국가운세를 알아보고자 했다. 1395(태조4)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석각(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흑요석, 가로 225 cm, 세로 211 cm, 두께 12 cm)’이 1985년 8월 9일에 국보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석각 ‘태양의 길(黃道)’에서는 24절기, 제왕의 운세와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과 삼원(北斗七星, 三垣)을, 그리고 농경시대 한반도에서 농사 때를 알려주었던 남두육성이 그려져 있다. 성도(星圖: 별자리 그림) 한가운데는 북극성(紫微垣)이 있고,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黃道), 천구(天球)의 남북중심으로 적도(赤道)가 지나가고 있다. 당시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별들을 모두 다 그려넣었다. 황도를 12등분 해 1천467개의 별을 점으로 표시했고, 그림 속에는 태양, 달,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토성, 목성) 등의 운행을 관측할 수 있었다.

서양에선 르네상스 시대에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주제로 건축된 바티칸 베드로 성당(Peter’s Basilica, Vatican)과 ‘열쇠모양과 천국’의 오브제인 피렌체 대성당(Florence Cathedral)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하게 천문학도시를 구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양천문학을 온전히 구현한 천문학 도시(Astronomy City)가 바로 달구벌이었다. “국자는 국속에 있어도 국 맛을 모른다.”고 했듯이 몸담고 살아가는 대구광역시가 지구촌 유일한 천문학 도시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대로 구현한 도시가 달구벌이라는 사실은 신라시대의 천문학에 의한 8괘진 호국성이란 사실은 접어놓고도, 오늘날 도시계획으로도 입증이 가능하다. 단적인 사례론 대구광역시 도시철도 제1호 지하철은 ‘태양의 길(黃道)’이고, 제2호선은 ‘오행성의 길(五行星道)’이며, 제3호 지상철은 ‘삼원의 길(三垣道)’이다.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은하철도(galaxy railroad)’ 3호선만 말하면, 남두육성은 수성구 용지(龍池 혹은 龍蹄)에 해당, 뭇별들이 떠받들고 있는 북극성 속 천왕이 살고 있다는 자미원(紫微垣, 玉皇上帝之皇宮)은 오늘날 서문시장을 만들고자 매립했던 과거 천왕지(天王池)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기 906년 6월 26일 최치원(崔致遠) 쓴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에서 “이곳이 바로 신성한 곳이다(是處是聖地也).”라고 경탄했던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금호강 은하수(성경의 요르단 강)를 거너서 칠곡운암지(七谷雲巖池)를 거쳐 서리못(霜池) 물속으로 몸을 감추고 있으나, 명왕성이 있는 동북쪽으로 다시금 승천의 꿈이 서려져 있다.

◇‘나의 별이 빛나는 곳(where my star shines)’

 

미의 여신 닮아 아름다운 ‘금성’
달구벌에선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
새벽닭 울어야 뜬다 해서 ‘계명성’
태양 가까이 있어 ‘태백성’ 불리기도

영국 북서부 도시 블랙번(Blackburn) 태생 저술가 로빈 스카겔(Robin Scagell, 1946년생)은 도시에서나 교회에서 밤하늘의 별보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도시천문학: 도시와 교외에서 별보기(Urban Astronomy: Stargazing from Towns and Suburbs)’를 2014년에 출판했다. 대구시는 지구촌에서 유일한 천문학도시이기에 삶 자체가 조금만 깨닫고 느낀다면 밤하늘 별처럼 빛날 수도 있고, 쏟아지는 별처럼 축복받는 삶임을 자각할 수 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The starry sky is so beautiful. Like a fool, I just stand in tears).” 바로 그곳이 달구벌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대구는 “나의 별이 빛나는 곳이다(where my star shines).”

서양에선 미의 여신을 닮아 아름답다는 금성(Venus)이 있다. 달구벌에서는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해서: i) 팔공산 갓 바위 부처님의 머리위에 떠있는 동트는 새벽별(morning star)이 ii) 6개월이 지난 뒤엔 산비둘기가 둥지를 찾아들 때쯤 비슬산 대견사(琵瑟山 大見寺)의 삼층석탑에 걸려있는 개밥바라기별(star of dog-food bowl)이 된다. iii) 그래서 우리는 새벽닭이 울어야 새벽별(Morning Star)이 뜬다고 해서 계명성(鷄鳴聲)이라고 했고, iv) 태양에 가까이 있어 매우 희고 밝아 태백성(太白星)이라고 했다. v) 또한 2013년에서 2014년에 방영했던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태백성을 타고 온 외계남과 왕 싸가지 천송이(千頌伊)의 기적 같은 3개월간의 달콤한 로맨스를 그린 ‘별에서 온 그대’ 연속극이 있었다. vi) 이는 바로 달구벌에 살았던 우리 선인들의 홍루몽(紅樓夢)이고 구운몽(九雲夢)이었다.

◇흑요석 좀돌석기

달구벌에 살았던 옛 선인들의 천문학 문화(astronomy culture)를 살펴보면: 먼저, i) 수렵채취시대(구석기시대)엔 생존경쟁과 이동하는 삶속에서 천문학문화, ii) 농경목축사회(신석기시대)엔 정착과 안정화를 위한 천문학 문화, iii) 국가형성이후(청동기시대)엔 제정일치와 번창을 위한 천문학 문화, iv) 철기시대 이후엔 전쟁과 평화를 위한 천문학 문화로 구분된다.

과거는 오늘날처럼 애초부터 문화, 종교, 경제, 사회 등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생존 혹은 생활 그 자체에는 문화, 종교, 정치 등이 한 덩어리였다. 제정일치(祭政一致, unity of the church and state) 혹은 종교(제사)와 정치(통치)가 뒤섞인 범벅이었다. 당시는 제사, 종교, 문화, 통치, 경제 등이 불가분 한 덩어리(包括的一塊, comprehensive lump)였다. 그런 결과물로 오늘날 국제사법재판소의 근본적 재판시스템은 종교재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더 소급하면 제정일치까지 소급되고 있다. 재판관의 법의(法衣), 재판절차(儀禮), 법봉(法棒), 선서(宣誓). 용어 등이 종교재판과 그 이전 제정일치 신탁에서 나왔다.

달구벌에서 3 ~ 4만 년 전 선인들이 거주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로는: i) 무관심이었다. 즉 구석기시대의 유물은 경기도 연천시 전곡리의 아슐리안(Acheulian)형 손도끼(hand-axe)처럼 자연석을 사용하거나 깨뜨리는 정도였기에 광적인 관심 없이는 간과되었다. ii) 토질과 자연환경이었다. 달구벌은 사막처럼 건조지역도 아니고, 알칼리성 토양도 아닌 산성습윤토양(酸性濕潤土壤)으로 쉽게 부식(腐蝕)되어 분해 혹은 소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6년 월성동 777의 2 유적지에서 좀돌석기(細石器, 日本 あらや 荒屋形石器)를 발굴함으로써 1만8천년까지 소급되어 구석기시대 중기(말기) 이전부터 달구벌에 선인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특히 선인들이 사용했던 좀돌석기(microlith)의 재료는 날카로운 유리성분이 많은 흑요석(黑曜石)으로 700km 이상 떨어진 백두산(白頭山)에서 가져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출토물 357점 가운데 100점을 레이저절삭 유도결합 플라즈마 질량분석기(LA-ICP-MS)를 통해서 확인했다. 흑요석은 선사시대 땐 칼날, 화살촉, 창촉(槍鏃) 등으로 날카로운 무기로 사용되었다. 특이하게도 흑요석 칼날은 남미 잉카제국에서 마추픽추 태양신전(祭典)에 희생되는 전쟁포로들의 심장을 축출해 공희(供犧)로, 오늘날에도 심장수술용 3 나노미터 이하의 예리한 메스(mess)로도 이용되고 있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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