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스테레오(stereo)
[달구벌아침] 스테레오(stereo)
  • 승인 2022.05.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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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봄에 내리는 비는 생명의 비라 표현할 수 있겠다. 그 비는 마치 배고파 우는 어린 아기에게 제공되는 따뜻한 엄마의 젖과 같다. 그만큼 비라는 것이 모든 생명에게는 소중한 존재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를 상당히 좋아한다. 비가 오면 왠지 시원한 감정이 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짜릿한 기분도 든다. 어릴 때는 비가 오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놀았다. 고무신이 이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비포장 길 위에 웅덩이 같은 곳에는 비가 고였고 그 웅덩이에 어김없이 고무신을 신은 어린 꼬마인 내가 있었다.

비는 사람을 감성에 젖게 만든다. 비가 내리는 날, 차 안에 홀로 앉아서 차 천장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뚜닥 뚜닥' 차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사실을. 빗소리는 세상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운 소리다. 거기에다 음악이 잔잔히 함께 흘러나온다면 최고다. 욕심내어 하나 더 보태 본다면 따뜻한 커피까지 한잔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렸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맘껏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빗소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를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 둘이 어울리니 이건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생각이 깊어졌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런 기분을(감성을)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무 말 없이 이 빗소리와 음악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들으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는 스테레오(stereo)의 삶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테레오와 대비되는 것은 모노(mono)다. 모노는 하나의 스피커나 채널을 통해 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스테레오에 비해 소리가 그렇게 풍성하지 못하다. 반면에 스테레오는 둘 이상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는 방식으로 입체감 있는 풍성한 소리를 제공한다. 모노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나는 분명 더 풍성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나를 성찰해가다 보니 정말 나는 모든 순간에서 스테레오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 또래의 친구들보다 일찍 카세트를 접하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처음 사용하는 이어폰은 한쪽 귀에 꽂아서 듣는 것이었다. 그 방식이 바로 모노 방식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음악이 작은 소리로 나와도 마냥 좋았다. 카세트도 거의 다 모노 방식이어서 스테레오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냥 전부 그런 줄 알고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술이 발달하여 두 귀에 꽂는 이어폰이 나왔고, 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나를 신세계로 안내했다.

스피커가 하나일 때 보다 스피커가 2개 일 때, 소리는 더 풍성해진다. 그리고 두 개일 때보다는 스피커가 4개 일 때 훨씬 더 소리가 풍부해진다. 전해지는 감동 자체가 다르다. 혼자 부르는 노래보다 둘이 부르는 노래가 듣기 좋은 이유와 비슷하고, 셋과 넷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 훨씬 더 풍성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아가서 한둘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는 합창은 정말로 아름답다. 모두 순간의 감동이 스테레오가 되어 전달되기 때문이다. 재밌는 영화를 혼자볼 때보다는 영화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면 훨씬 더 재미있는 이유도 그렇고, 무서운 영화를 사람들과 함께 볼 때 훨씬 더 무서워지는 이유도 바로 스테레오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도 모노(혼자 행복)보다는 스테레오(함께 행복)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맛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좋은 영화를 함께 보고, 좋은 풍경을 함께 본다면 삶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2002년 월드컵 그 순간의 감동이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날이 함께 행복했던 스테레오의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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