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5월에 생각하는 아버지의 의미
[금요칼럼] 5월에 생각하는 아버지의 의미
  • 승인 2022.05.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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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식 대구공업대학교 사회복지경영계열 교수
2022년도에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왔다. 5월만 되면 유독 필자는 “남자에게 있어 아버지란 어떤 의미일까?”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시인은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 가족의 부양의무 때문에 축 처진 어깨를 남몰래 숨기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표현했다. 이는,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 그리고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근·현대 역사 속 이 땅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의 아버지는 1915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란성 쌍둥이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할아버지는 마을 훈장의 외아들이었으나 공부를 멀리해 일자무식이 되었고, 어느 날, 무당의 권유로 고향의 전답을 팔아 이웃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마을의 사기꾼이 저당 잡힌 땅을 소개했으나 문서를 읽을 줄 모른 채 그 땅을 사게 된 할아버지는 결국 모든 전답을 빼앗겨 집안은 몰락하게 되었다 한다. 당시, 쌍둥이였으나 3분 일찍 태어나 장자가 된 큰아버지만 겨우 초등학교를 다니고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셨고,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큰아버지 역시 중학교 진학은 포기한 채 두 분 모두 울분을 간직한 채 어린 나이로 농사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던 중 15살이 된 1930년 무렵, 조선 전국이 극심한 가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할 수 없이 형제가 함께 이웃마을 부잣집의 머슴으로 가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두 분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머슴으로 간 첫날에 주인은 산에 가서 땔감 나무를 해 오라 지시했고, 형제는 나란히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하고 있었다 한다. 오후가 되어 잠시 쉬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형제는, 아버지인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산을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 뒤에서 두 분 또래인 주인 집 아들이 할아버지의 지게 작대기를 쥐고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당겼다가 하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몸이 앞으로 뒤로 휘청거리면서 힘겹게 산을 올라오고 있었고, 할아버지께서 ‘네 이놈!’ 하고 호통만 쳐도 아이는 장난을 그만둘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는 계속 당하고만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형제는 단숨에 뛰어 내려가 그 주인집 아이를 심하게 두들겨 패버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새벽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무릎을 끓고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 떠나겠습니다.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어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살아만 계십시오”하며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린 후,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15살 어린나이에 고픈 배를 움켜쥔 채 밀항선을 타고 먼 일본으로 떠났던 것이다. 나라 잃은 서럽고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 어린 시절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당시의 두 어린 형제도 일본에서 인삼 장수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쌍둥이 형님이던 큰아버지께서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 폭탄을 맞아 돌아가신 바람에, 아버지는 뜻밖에 종가 집안의 장손 역할까지 맡게 되셨으니, 파란만장한 인생길이 정말 눈물겨운 길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대학교수가 된 후 매년 학생들을 인솔해서 선진 복지시설 견학을 위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모든 학생들이 잠든 밤에 혼자 갑판으로 나와서 일제시대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항선을 타고 가슴 졸이며 이 캄캄한 바다를 건넜을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향해 마음으로 외쳐보곤 한다. “아버지!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15살 어린 나이에 이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었습니까?” 하고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늘 ‘인생은 한권의 책을 쓰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하루 한 페이지씩만 충실하게 살거라’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변함없이 가슴에 새겨져, 해마다 5월이면 더욱 또렷이 살아나 내 삶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아버지인가? 앞으로,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5월 가정의 달을 맞게 된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모두 어떤 아버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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