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상에 무뎌지는 것을 넘어 하루하루가 새삼스러워질 때, 비로소 오십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봄날이 가고 있는 연휴 셋째 날 아침이다. 석가 탄신일이며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또한 월드 스타 강수연이 향년 55세로 별세했다는 비보를 접한 날이기도 하면서 오십 줄에든 내 동생의 생일날이다.
평리동에서 출발해 서대구역사를 거처 와룡산 무학사를 들러 신동재를 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많은 길을 만났다. 단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엿보고 답습하며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비우거나 다시 채우기도 하면서 길에서 길을 물었다.
산책처럼 나선 길에서 처음 만난 길은 얼마 전 새롭게 개통한 ‘서대구역사’였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갖가지 플래카드가 벽보처럼 나붙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상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세입자의 희생을 애도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새 역사와 상여가 맞물려 있는 풍경이 기찻길처럼 팽팽하다. 새로운 탄생이나 해방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길을 내며 자연의 길을 마련해주듯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 한 점 풍경 위에 더해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라’는 평범한 진리 속에서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가 본 길이든 가 보지 못한 길이든 결국 길은 길로 이어지듯 서로 맞잡은 길에서 온기를 느끼며 상생하듯 새로운 길을 구했으면 싶다.
알싸한 아침 공기가 품어져 나오는 거리를 활보하며,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다. 삼 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거리에서 벗은 적 없는 마스크를 오월 둘째 날부터 착용 의무가 풀렸다. 비록 실외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주변엔 벗은 사람보다 마스크를 쓴 이가 더 많다. 간혹, 낀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치가 보인다. 벗은 나로 인해 낀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직은.
두 번째 만난 길은 상리동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다. ‘무학사’라고 새겨진 돌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톨게이트 근처라 그런지 바쁘게 오가는 차량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에 홀린 듯 몇 개의 굴다리를 지나 길은 끝인 듯 끝이 아닌 듯 미로처럼 계속 이어져 있다. 되돌아 나오려 했지만, 차를 돌려세울 마땅한 곳이 없다. 인적이 드문 으슥하고 낯선 산길을 따라 쭉 오르니 그 끝에 절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영 다른 별천지 같은 세상이 드러났다. 무학사無學寺는 배울 필요가 없는 진리를 표현한 것이라 전해진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금낭화처럼 매달아 놓은 연등에 새겨진 소망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논어 중 한 구절을 떠올리며 산에서 내려온다. ‘아침에 진실한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듣고 이것을 체득했다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 삶의 태도와 살아가는 길을 안다는 것이 이처럼 중대한 것이리라.
세 번째로 이어지는 길에서 길이 막혔다. ‘길 없음’을 만난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모르는 길이라는 듯 시침을 떼고 있던 차였다. 길을 잃을까 봐 누군가 써 놓은 교통 표지판에서 따스함이 배어온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사고라도 날까 봐 돌아가라는 온기 가득한 마음을 새겨 놓았다. 다정하게도. 인생길에서는 내일을 미리 알려주는 표지판이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듯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서 길을 잃었다.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인 오른쪽으론 갈 수 없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라곤 없다. 나갈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생소한 왼쪽 길뿐이다.
살다 보면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없진 않다. 막힌 길 앞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막막해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좌회전으로 방향을 튼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내비게이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비가 말썽꾸러기 자식을 타이르듯 연신 잔소리해댄다. 김규동 시인의 ‘당부’가 불안을 잠재우듯 위로를 보낸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새로운 길에서 길을 만났다. 신동재를 넘는다. 꽃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아카시아와 이팝나무 꽃, 사이사이 찔레꽃이 길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앉아 사열하듯 피어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 첫발을 내딛는 신부의 부케 같은 꽃잎 세례를 우리들 머리 위로 흩뿌려준다. 천사처럼 날개를 펼친 민들레 홀씨가 허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하늘로. 마이웨이를 꿈꾸며.
평리동에서 출발해 서대구역사를 거처 와룡산 무학사를 들러 신동재를 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많은 길을 만났다. 단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엿보고 답습하며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비우거나 다시 채우기도 하면서 길에서 길을 물었다.
산책처럼 나선 길에서 처음 만난 길은 얼마 전 새롭게 개통한 ‘서대구역사’였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갖가지 플래카드가 벽보처럼 나붙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상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세입자의 희생을 애도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새 역사와 상여가 맞물려 있는 풍경이 기찻길처럼 팽팽하다. 새로운 탄생이나 해방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길을 내며 자연의 길을 마련해주듯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 한 점 풍경 위에 더해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라’는 평범한 진리 속에서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가 본 길이든 가 보지 못한 길이든 결국 길은 길로 이어지듯 서로 맞잡은 길에서 온기를 느끼며 상생하듯 새로운 길을 구했으면 싶다.
알싸한 아침 공기가 품어져 나오는 거리를 활보하며,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다. 삼 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거리에서 벗은 적 없는 마스크를 오월 둘째 날부터 착용 의무가 풀렸다. 비록 실외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주변엔 벗은 사람보다 마스크를 쓴 이가 더 많다. 간혹, 낀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치가 보인다. 벗은 나로 인해 낀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직은.
두 번째 만난 길은 상리동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다. ‘무학사’라고 새겨진 돌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톨게이트 근처라 그런지 바쁘게 오가는 차량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에 홀린 듯 몇 개의 굴다리를 지나 길은 끝인 듯 끝이 아닌 듯 미로처럼 계속 이어져 있다. 되돌아 나오려 했지만, 차를 돌려세울 마땅한 곳이 없다. 인적이 드문 으슥하고 낯선 산길을 따라 쭉 오르니 그 끝에 절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영 다른 별천지 같은 세상이 드러났다. 무학사無學寺는 배울 필요가 없는 진리를 표현한 것이라 전해진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금낭화처럼 매달아 놓은 연등에 새겨진 소망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논어 중 한 구절을 떠올리며 산에서 내려온다. ‘아침에 진실한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듣고 이것을 체득했다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 삶의 태도와 살아가는 길을 안다는 것이 이처럼 중대한 것이리라.
세 번째로 이어지는 길에서 길이 막혔다. ‘길 없음’을 만난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모르는 길이라는 듯 시침을 떼고 있던 차였다. 길을 잃을까 봐 누군가 써 놓은 교통 표지판에서 따스함이 배어온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사고라도 날까 봐 돌아가라는 온기 가득한 마음을 새겨 놓았다. 다정하게도. 인생길에서는 내일을 미리 알려주는 표지판이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듯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서 길을 잃었다.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인 오른쪽으론 갈 수 없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라곤 없다. 나갈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생소한 왼쪽 길뿐이다.
살다 보면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없진 않다. 막힌 길 앞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막막해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좌회전으로 방향을 튼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내비게이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비가 말썽꾸러기 자식을 타이르듯 연신 잔소리해댄다. 김규동 시인의 ‘당부’가 불안을 잠재우듯 위로를 보낸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새로운 길에서 길을 만났다. 신동재를 넘는다. 꽃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아카시아와 이팝나무 꽃, 사이사이 찔레꽃이 길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앉아 사열하듯 피어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 첫발을 내딛는 신부의 부케 같은 꽃잎 세례를 우리들 머리 위로 흩뿌려준다. 천사처럼 날개를 펼친 민들레 홀씨가 허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하늘로. 마이웨이를 꿈꾸며.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