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향기롭게 발효되는 삶의 파노라마 ‘곽홍탁 희수전’
[화요칼럼] 향기롭게 발효되는 삶의 파노라마 ‘곽홍탁 희수전’
  • 승인 2022.05.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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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 문학박사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

꽃 좋고 열매 많나니

모란이 지고 작약 꽃대궁이 분홍으로 벙글어가는 봄날, 봉산동 갤러리에서 향기로운 삶의 파노라마를 만났다. 《곽홍탁 희수전》이다. 희수(喜壽)는 ‘喜’자의 초서가 ‘七十七’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이 ‘일흔 일곱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서의 희수는 한자어 ‘喜壽’ 그대로 즐겁고, 기쁘고, 좋은 것이 많은 나이로 읽힌다. 어쩌면 내면의 희망사항으로 인한 각인일 것이다. 백세시대에 77세 연수 어른과의 대면은 일상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며 즐겁게 ‘희수(喜壽) 인생’이라고 회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처럼 《곽홍탁 희수전》은 특별했다. 「용비어천가」를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여, 꽃은 아름답고 열매가 많음이라’

조선 세종 29년(1447년)에 간행한 악장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부분이며, 널리 알려져 암송되고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용비어천가」는 나라의 건국 유래, 조상(祖上)의 성덕, 후손의 천명, 그리고 자손으로서의 경계, 보수(保守), 영창(永昌)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서사시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 바탕을 저변에 두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것이 나의 「용비어천가」 다. 거대한 바다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수많은 샛강의 모습은 다양하다. 서사인 듯 서정이고, 문집인 듯 악보, 종이인 듯 목판, 서필인 듯 서각, 교술인 듯 독백, 말씀인 듯 노래가 모여 해와 달을 품은 바다의 교향곡으로 태어나곤 한다.

《곽홍탁 희수전》은 또 다른 「용비어천가」의 발견이었다. 지금까지 인간은 대우주를 반영하는 신비한 작은 우주, 작은 세계(mikros kosmos)로 알고 있었다. 이제 인간의 수명이 백년을 뛰어넘는다면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 생활 태도는 이전과는 달리 또 한번 전환되어야 한다. 인생 전반과 후반에 걸친 긴 세월은 ‘작은 바다’에 이르는 여정이며, 그 노래는 왕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작은 용비어천가’로 태어날 수 있음을 《곽홍탁 희수전》은 보여준다. 근암, 곽홍탁 선생은 우리나라를 일본이 강제로 점령했던 수탈과 치욕의 사슬에서 해방되던 해 태어났다. 나라의 가난은 비록 어린이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근면의 자세가 요구되던 사회였음을 그의 호 근암에서 읽는다.

근암 선생은 산업의 발달과 인간의 편리한 생활 추구가 빚어낸 환경문제의 해결과 환경교육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교육자다.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환경을 만나며, 그때마다 먼저 자신 스스로 오염인자(汚染因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 실천 중 하나가 틈날 때마다 문방사우(文房四友)와 벗하며 세심(洗心)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언 40여 년의 세심의 시간은 자신의 서법을 찾게 하였고, 남다른 심미감을 갖게 하였으며, 오유지족(五唯知足)을 터득하게 하였다. 물론 그 행복의 값을 치르기 위해 숱한 탐욕은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다. 지구인의 일상을 뒤틀어놓은 2년간의 코로나 시기는 신앙인인 그를 더욱 말씀에 심취하게 하였고, 은혜의 말씀을 붓으로 새겨 읽게 하였다. 화선지에 옮겨진 시편, 잠언 등 성경 말씀이 무려 700여 편에 이른다. 특히 은혜로운 말씀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희수전(喜壽展)이라는 이름으로 서예·서각(書刻) 등의 작품을 펼쳐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근암 선생은 《희수전》을 마무리하고 이제 또 남은 삶의 시간을 설계할 것이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로 이끌어갈 것이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고, 내[川]를 이뤄 바다에 가 닿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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