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미술관, 추상서예가 노상동·현대미술가 안종연 ‘2인전’
소헌미술관, 추상서예가 노상동·현대미술가 안종연 ‘2인전’
  • 황인옥
  • 승인 2022.05.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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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과 빛이 만나 ‘둘 아닌 하나’, 세계로 나아간다
빛의 조합 등 공통 분모 대표작 소개
고전 전문 등 한지에 먹으로 드로잉
서예 작품 사이사이에 빛 작품 전시
둘 다 동양 정신을 서양 형식 표현
전통 미술 현대화 세계인 마음 잡기
내년에 아부다비 전시 등 해외 진출
다시-안종연-작
안종연 작

 

추상서예가 노상동은 서예의 본령(本領)을 기운으로 표현하고, 현대미술가 안종연은 빛(光)을 우주의 중심으로 형상화한다. 분명 먹(墨)과 빛의 이질적인 만남인데, 두 작가가 “둘이 아닌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동양 서예의 물성인 먹과 서양미술의 핵인 빛이 하나인 까닭을 그들은 ‘정신성’에 두고 있다. 이들 두 작가는 동양사상을 작업의 개념적 뿌리로 두며 먹과 빛으로 조형화 하고 있다. 22일까지 소헌미술관에서 열리는 노상동과 안종연의 2인전 ‘먹과 빛’전에서 두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동양의 정신과 예술의 다채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 ‘빛’으로 우주를 표현하는 안종연

안종연은 빛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빛을 우주를 품고 있는 거대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 존재가 그에게는 인간이며, 빛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한 점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표현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을 하나의 빛으로 표현하고, 우주라고 명명했다.

“우주로부터 온 인간이 지구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우주를 품을 만큼의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을 빛으로 표현했어요.” 그에게 빛은 우주로서의 인간, 근원으로서의 우주 등 다층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그에게 원(圓)은 곧 점(點)이다. 점(點)은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로 손꼽히는 김환기로부터 출발했다. 안 작가는 김환기의 직계제자인 정건모의 제자다. 정건모가 김환기의 영향으로 점을 작업의 출발로 삼았듯, 안 작가도 두 스승의 점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하려 했다. 그 핵심이 ‘빛’이었다.

미국의 명문 스쿨인 오브 비주얼아트를 졸업한 안 작가는 세계적 건축가와 콜라보레이션 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천정 조형물 ‘좌화취월’과 제주도 휘닉스 아일랜드의 ‘광풍제월’ 그리고 영월군 동강생태공원에 설치한 ‘수광영월’ 등의 공공미술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해외에서도 명성을 쌓아왔는데, 특히 2013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업 여정에서 공공미술은 큰 비중으로 다뤄졌다. 다양한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하고 관객과 소통했다. 유달리 공공미술에 천착하는 이유는 “대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가 “공공미술은 대지 그림의 실현”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전시에는 스테인레스에서 물 빛을 발견하고 그 물빛을 극사실로 표현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작품과 기포와 빛으로 표현한 유리 입체, 조각과 빛의 조합으로 드러난 설치 등 빛을 공통분모로 하는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된다. 그는 “이번 전시는 소헌 김만호 선생님과 소헌미술관 불을 밝히기 위한 전시”라며 “작은 우주인 소헌미술관과 인간에게 빛을 밝혀 큰 우주로 쏘아 올리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강조했다.

◇ 추상서예로 서예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노상동

전통서예로부터 출발한 노상동은 지난 50여년간 문자의 해체를 통해 현대인의 미의식에 부합하는 서예를 제시하는데 사활을 걸어왔다. 출발은 ‘한일자(一) 긋기’였다. 서예의 본령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한일자에 주목했다. 한일자에 대한 탐구는 정신이 물질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세태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했다. 이후 문자의 해체는 점(點)으로까지 이어졌다. ‘파서(破書)’였다.

한일자의 변주는 ‘적서(積書)’로 확장됐다. 시각예술의 출발이자 문자의 근원인 점을 집적한 것. 점의 집적은 곧 면으로 드러났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감행했다. 획에서 다시 서예로 회귀한 것. 왕희지의 난정서나 노자의 도덕경 등 고전의 전문이나 부분을 한지에 먹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전통서예에서 보면 이 역시 파격이다. “50여년간 진행된 한일자의 해체 끝에 나온 작업인 만큼 전통서예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한 번의 파격은 서예의 본령 찾기와 연관된다. 그는 형상과 의미를 버리고 기운(氣運)의 손을 잡았다. 서예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간 결과 화면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난초와 대나무도 그렸는데, 이 역시 형상에 집중하는 대신 기운을 취했다. 기운으로 표현된 문자나 사군자는 문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구상이나 추상으로 분류하기에도 명쾌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의 기운, 즉 본질을 바라본 결과다. “사군자나 문자 모두 형상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어요. 본령으로 돌아온 결과죠. 글자를 썼다기보다 기운을 드로잉했죠.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하는 형상 위주보다 본질적인 기운에 역점을 기울인 것이죠.”

다시-노상동작
노상동 작

◇ 소헌 김만호 선생의 소묵(素墨)을 한국현대미술의 뿌리로…

소헌미술관 ‘먹과 빛’전은 두 가지 지향으로부터 출발한다. 전통문화를 보편예술로 치환하여 현대미술의 범주로 제시하려는 의도와 그것을 기반으로 K-POP처럼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서양 미술을 배워서 역으로 서양으로 진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미술을 현대화하여 세계인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겠다”는 것. 안 작가는 “이번 전시는 해외진출의 첫 출발점이 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소헌미술관에는 노 작가의 서예 작품 사이사이에 안 작가의 빛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노 작가의 먹빛이 안 작가의 빛을 흡수하며 깊이를 더하고, 안 작가의 빛이 노 작가의 빛을 만나면서 한결 부드러워진다. 사실 두 작가의 만남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동양과 서양의 결합이다. 둘 모두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 작가의 경우 동양성을 지극하게 끌고 간다는 점에서 차이를 찾을 수 있다.

노 작가는 “동양의 먹을 먹색이라 하지 않고 먹빛이라고 한다. 색은 물질의 세계지만 빛의 정신의 세계인데 서예가 정신의 세계를 탐구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작가님이나 저나 물질에서 정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개념이 같습니다. 그것을 아우르는 매개로 둘 모두 빛을 바라본 것이죠.”

‘전통서예를 밝혀 새로운 예술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과제 앞에서 두 작가는 왜 소헌 선생에 주목했을까? 소헌(1908~1992)은 근·현대 한국 서예계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서예가다. 그는 영남의 필봉(筆鋒)으로 우뚝 서 있는 향토가 낳은 서예 거목(巨木)으로, 평생 우리나라 서예 전통과 발전을 위하여 스스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다했다. 그의 서실(書室) ‘봉강재(鳳岡齋)’를 통해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서법연마와 정신수양의 병행을 스스로 실천한 철학자였다. 그 중심에 소헌의 독창적인 서체인 소묵(素墨)이 있다.

노 작가는 소헌의 소묵을 “정신이 물성으로 나타난 서체”라고 표현했다. 대개 정신은 형상에 매이게 되는데, 소헌은 서예가를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 노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소헌이 자유로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보통은 정신이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면 소헌 선생은 정신이 바로 물성으로 드러난 경우였어요. 정신이 물질에 덮이지 않고 본성 자체로 흰색이었던 것이죠. 먹이라는 외형은 검은빛으로 드러났지만 그것은 하얀 먹빛이었지요.”

소헌의 정신은 소헌미술관 전시 이후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노 작가와 안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것. 해외진출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진출하는 지역은 중동이다. 2023년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2인전을 연다. 소헌의 정신과 안 작가와 노 작가의 만남이 물질에 잠식 당한 세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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