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세심한 관찰과 묘사,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세심한 관찰과 묘사,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다
  • 윤덕우
  • 승인 2022.05.1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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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감 중요하지만, 대상 특성 알면 그림에 차별성 줄 수 있어
실물 크기와 같은 ‘군접도’·생생한 인물 표현 특징인 ‘짚신삼기’
옛 민화 모사에 그치지 않고 작가 생각 담긴 ‘새 민화’ 개발해야

흔히들 5월을 계절의 여왕, 신록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따스한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기다리며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고 나뭇가지에 푸른 잎이 짙어가는 생동의 계절이다. 5월은 일 년 중 가장 밝고, 맑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시기라 “5월이 지나면 한 해가 다 갔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림도 열심히 그려 보겠다는 각오로 함평 나비 축제를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나비가 날라 다니는 멋들어진 화접도(花蝶圖)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고, 여러 명의 민화작가들의 그린 화접도가 하나같이 도식화된 나비들이 대부분이라 실제 나비를 제대로 보고, 하늘하늘 나르는 그 찰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남다른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그냥 보는 것과는 다르다. 관찰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든 주의 깊고, 세밀하게 보기 시작 하는 것! 그것이 화가가 가야 하는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사물을 똑같이 표현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물의 재질감과 특성을 파악하는 관찰력은 그림에 대한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사물의 내부와 감춰진 부분은 물론, 변화의 방향과 형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정확한 관찰력에서 비롯된다.

정확한 관찰은 곧 표현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며 사물의 재질감과 형태는 물론 소재의 기능과 움직임까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지금의 화가들에게만 관찰이 중요한 것일까... 조선중기를 지나 실제 우리강산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를 시작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화면으로 담은 풍속화, 우리나라의 동식물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관찰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고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희들 동양의 회화를 사생(寫生)이 아니라 사의(寫意)라고 논의되어왔다.

이것은 ‘사의’를 주관적 의식의 표현이라고 보고, ‘사생’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여기는 주관과 객관의 묘사라는 이분법적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화조·영모화를 비롯하여 화훼·초충·어해도가 부쩍 발달하였다.

동시기에 유행한 진경산수화나 풍속화 등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양의 뛰어난 사실묘사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시대 화가들에게도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정확한 표현, 사실적인 묘사력이 그림에 생명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조선 후기 화가들은 자기가 각별히 선호하거나 한 물상만 그림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많아졌다.

화가마다 전문영역을 가짐으로써 특정한 화가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세우게 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남계우의 나비, 변상벽의 고양이, 최북의 메추라기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남계우군접도5-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작 군접도 12폭중 3폭 10.8 X 13.3cm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비를 멋들어지게 그리기로 했으니 우선 남계우(一濠 南啓宇)의 나비를 한번 살펴보자.

남계우는 어려서부터 나비를 좋아해 나비를 채집하여 사생을 하곤 하였다. 16살 때에는 서울의 남송현 집에 날아든 나비를 ㅤ쫓아 십리를 따라가 동대문 밖에서 잡아 돌아오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나비를 잡아 유리그릇에 가둬놓고 기르면서 나비의 생태를 연구하였으며, 이와 같은 일화를 통해 나비의 형태와 날개의 움직임과 색깔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호랑나비를 왼쪽에는 부처나비를 그렸는데 평균 10cm가 넘는 호랑나비와 3~4cm정도 되는 부처나비의 크기를 정확한 비례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실물과 똑같아 남계우가 세밀한 관찰을 통해 나비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산제비나비의 형태와 색감 그리고 그 날갯짓이 사뿐사뿐, 한들한들 우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면서 저 날갯짓을 어떻게 화면에 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관찰은 모든 감각을 통해 해야 한다.

화가들의 놀라운 작품들은 ‘수동적인 보기가’가 아닌 ‘적극적인 관찰’의 산물이다. 화가들의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관찰력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화가들은 “손이 그릴 수 없는 것은 눈이 볼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글 쓰기 또한 예리한 관찰의 기술이 요구된다. ‘진짜처럼 보이는’ 플롯의 전개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과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야 한다. 독자들의 감각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감각 자체를 알아야 한다. 작가는 경험과 관찰을 통해 그것들을 분석한다.

여기 조선후기 두 화가의 그림을 보시라.
 

윤두서-짚신삼기
윤두서 작 수하직이도(樹下織履圖) 짚신삼기 저본수묵. 32.4×21.1cm 해남 윤영선 소장.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풍속화는 생생한 인물 표현 등의 형식미에도 불구하고 언덕과 산의 풍경 묘사가 전통 화풍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풍속화적 느낌을 감소시키는 아쉬운 점이 있다.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서 한 노인이 짚신을 삼고 있다. 잘 고른 짚더미를 깔고 두발을 곧게 편 채 앉아서 양쪽 엄지발가락에 끈을 걸어 놓고 당기며 짜나가는 자세이다.

무릎이 드러나도록 짧은 잠방이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린 노인은 덤덤한 표정이다. 이 그림 역시 상투를 튼 얼굴이나 전체적인 골격과 옷매무세까지 먹의 섬세한 강약 조절로 정확하게 그려낸 사생적 인물화법이 눈에 띈다. 윤두서의 이러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은 19세기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에 바탕이 된 것은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풍속도화첩-씨름도
김홍도 작 풍속도화첩 중 씨름도 22.2 X22.9cm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씨름도>는 김홍도(丹邱 金弘道)의 풍속화 특징을 대표할 만한 명품에 속한다. 두 무리의 구경꾼들을 화면의 위아래에 둥글게 배치하여 가운데 공간을 연 다음, 서로 맞붙어 힘을 겨루는 두 사람의 씨름꾼을 그려 넣어 그림의 중심을 잡았다. 왼쪽에 서 있는 엿장수는 구경꾼들의 관심 밖에 있으면서도 이 원형 구도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벗어 놓은 신발은 오른쪽으로 터진 여백을 좁히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처럼 빈틈없이 짜인 구성과 함께 간결한 붓질로 풍부하게 묘사한 인물들의 표정과 열띤 좌중의 분위기가 김홍도의 비범한 관찰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무명옷의 질감에 맞추어 구사된 투박한 필치와 둥글 넙적한 얼굴, 동글동글한 눈매도 그가 즐겨 다룬 풍속 인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관찰은 일상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일상에서의 관찰은 놀라운 통찰력을 갖게 한다. 욕조에 수면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망치질 소리를 주의 깊게 들던 피타고라스, 파란 하늘에 의문을 가졌던 물리학자 존 틴달 등 그들은 일상에서의 관찰을 통해 ‘세속적임 것의 장엄함’을 발견하였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서도 이러한 재발견이 일어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진정한 창조자는 가장 평범하고 비루한 것들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를 찾아낸다.”라고 했다. 무용가 커닝햄 또한 안무 작품에서 “작은 동작”을 추구했는데 이는 그가 창문으로 내다본 거리의 사람들의 동작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게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나 샵 등을 변형하지 않은 채 전시해 두고 관람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당신이 가장 생각을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 봐라”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이다. 결국 관찰행위의 목적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의식을 가능한 한 가깝게 연결하는데 있다. 조각가 베벌리 페퍼는 “어떤 것을 그릴 수 있다고 해서, 그리는 행위가 당신을 화가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예술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느냐의 문제다”라고 말하고 있다.

관찰에 대해 화가의 태도를 정리하면서 몇 해 전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가 몇 년 전 사찰의 보살님들에게 민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 매번 그분들께 “보살님들 꽃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신 적 있으세요? 생각해보세요, 이파리 느낌이 어떤지 기억해보세요.”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연세드신 보살님 왈(曰)"아무 생각 없이 그림 그리고 싶은데... 자꾸 생각하라고 한다고 투덜거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지! 관찰은 쉬운 일이 아니지. 얀 칩체이스의 책 <관찰의 힘>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했다. 민화는 본을 대고 그리는 그림이라. 옛 민화작품을 그대로 모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새로운 민화는 실제 대상을 관찰하고 화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우리들의 그림으로서 민화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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