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가정의 달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박명호 경영칼럼] 가정의 달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 승인 2022.05.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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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공원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공익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나에게도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손 글씨가 현수막에 씌어져 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실 위탁가정을 모집합니다’라는 글귀도 덧붙어 있다. ‘따뜻한’ 가족이라는 표현이 중언부언처럼 느껴졌다. 가정과 가족은 본래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었던가. 굳이 ‘따뜻한’이란 수식어는 왜 붙였을까. 아마도 가족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가정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의 달, 심지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도 어린이 학대, 노인 소외, 고독사 등 가정 폭력과 가족 범죄, 그리고 가족 해체 등 가정의 위기를 알리는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새 대통령은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 회복이라고 밝혔다. 또 취임사에서는 35번이나 자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가족이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가정이 빈곤과 고독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경제도 나라의 기반도 흔들린다. 가정의 행복에는 당연히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겠지만 가족의 본질이 상실된다면 물질적 풍요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래전 일본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일본의 민법에 ‘불효’를 처벌하는 규정을 설명한 일본 사회학자의 말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일본에서 ‘효(孝)’의 정의는 부모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의식주만 제공해도 효도라는데 부모를 얼마나 홀대했으면 법으로까지 정하게 되었는지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불효’ 조항을 법으로 규정해야 할 정도로 가족 돌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가족으로 모십니다’라는 직원모집 광고를 자주 보게 된다.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며 배려하고 보듬겠다는 다짐이다. 그룹회사에서는 자회사들을 종종 가족 회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이익 집단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온정주의는 오히려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무시로 발생하는 직원의 공금 횡령 사건을 비롯한 각종 비리도 동료 직원을 가족인양 여겨 잘못을 덮어 준 결과는 아닐까.

그렇다고 기업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기업은 고객과 종업원 그리고 주주,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종업원을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대우하고, 협력하여 목적을 이루도록 동기를 유발하여, 공동체 구성원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따뜻한’ 기업문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종업원의 삶의 질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이다.

최근 1인가구와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강조되고 있다. 이달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MZ세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5%가 ‘괜찮은 일자리 조건’으로 워라밸을 꼽았다. 직장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다. 워라밸을 실천하여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은 직원들의 애사심과 업무효율성 그리고 기업 이미지도 높아져서 탁월한 경영 성과를 낸다는 연구도 나온다. 이렇듯 워라밸은 자기계발과 기업경쟁력은 물론이고, 동시에 가족 문제까지 해결하여 우리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족 문제는 정치계서도 단골 이슈다.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각종 공무 담임 예정자의 청문회에서 예외 없이 등장한다. 청문회가 당사자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기보다는 가족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유능한 후보자라도 공무 담임을 기피한다. 그래서 가족 문제를 샅샅이 들추어내어 공직 담당자의 인품과 자격을 재단하는 것은 늘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가족 문제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대학’에 나오는 이 구절은 ‘반듯한 삶’의 원칙과 기준이다. 정진홍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3’에서 가족 문제는 수신과 제가의 덕목을 따지는 것이라고 했다. 수신은 자세며 공부다. 몸과 마음의 수양이다. ‘집을 가지런히 한다’라는 뜻의 제가는 관계와 소통이다. 가정에서 수신과 제가를 바로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된 안목과 원대한 비전을 가지기 어렵다. 나아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크게 흔들리며 붕괴되고 해체될 수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는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한 사람 때문에 변질되는 가족 관계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어떤가. 비록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식구라도 가족 구성원들이 이기심 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아끼며 따뜻하게 보살피는가. 가정은 인류라는 생명체가 이어져 온 근본이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기쁨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가정의 웃음이다” 스위스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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