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루나 폭락인데 가난에 시달리며 즐겁다니
[박한우의 미래칼럼] 루나 폭락인데 가난에 시달리며 즐겁다니
  • 승인 2022.05.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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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UST) 폭락 사태 때문에 수많은 투자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온라인에서 투자자들이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를 공유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도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 자택을 항의 방문하거나 손해배상 소송 등 투자자들의 분노와 좌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코인과 토큰 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수라장’이다.

소위 코인판이 끔찍하게 혼란 상태에 빠졌는데, 이 상황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는 밈(meme)이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 밈이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변형하고, 복제하고, 퍼트릴 수 있는 문화적 요소다. 밈은 특정 단어나 어구, 소셜미디어 해쉬태그, 이미지(짤), 동영상 등의 형태로 사이버 공간에서 급속히 퍼져나간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슈나 상황에 대해 사람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면 어떤 형태든지 가능하다.

루나 사태와 관련하여 유행하는 밈 표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가난에 시달리며 즐겁게 지내라“ 영어 원문은 ”Have fun staying poor”이다. 이 밈은 해쉬태그를 앞에 붙여서 약자로 #HFSP로 통용된다. 애초에 #HFSP는 비트코인을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사상과 가치를 믿지 않는 집단을 풍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몇 년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비트코인에 부정적 시선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은 장난으로 여겼던 #HFSP를 들으며, 더 이상 웃고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루나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HFSP를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루나와 테라는 스테이블(stable) 코인이라는 금융 비즈니스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성공했다. 탈중앙화 금융 즉 디파이(DeFi) 모델이다. 전통적 경제에 충실한 입장에서 보면, 디파이 서비스는 위험성이 매우 높다. 권도형 대표는 이 위험성을 지적한 경제학자에게 ”난 가난한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며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영어 원문은 “I don’t debate the poor on Twitter”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천문학적 자산을 잃어버린 사람은 권도형 자신이 돼버렸다. 권 대표가 가난하게 지내는 게 오히려 즐거운 사람이 된 것이다.

바이낸스는 세계 최대의 코인 거래소이다. 창평자오(CZ) 대표는 루나 사태로 바이낸스가 소유한 16억 달러 가치의 루나가 3천 달러 이하로 폭락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조 451억 원까지 치솟았던 바이낸스의 루나 보유고가 300만 원 이하로 추락했다. 그렇지만 창평자오는 개인 투자자가 바이낸스보다 루나 손실 보상을 더 일찍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창평자오는 트위터에서 이 상황을 희화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권 대표의 망연자실한 사진을 공유하며 “Poor again”이라고 쾌도난마처럼 응수했다. #HFSC 밈을 변형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비트코인을 너무 빨리 팔아버렸다면, 비트코인 추앙자로부터 ”가난한 생활을 즐기세요“라는 놀리는 듯한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루나 사태로 #HFSP 밈의 미러링(mirroring) 현상이 나타났다. 미러링의 원래 의미는 무의식적 모방행위다. 그렇지만 온라인에서 (역)미러링은 의견이 서로 다른 집단 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 밈을 뜻한다. 권 대표가 반대 집단에게 보여준 깔보는 반응과 창펑자오의 권대표를 향한 비웃는 트윗은 미러링으로 볼 수 있다.

최수진 경희대 교수 등은 해쉬태그와 결부한 밈 표현의 효과 연구를 2014년에 이미 발표해서 주목을 받았다. 국제저명지인 ‘New media & society’에 ‘An exploratory approach to a Twitter-based community centered on a political goal in South Korea: Who organized it, what they shared, and how they acted’로 출판된 논문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해쉬태그 밈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채택하는 문화교란(culture jamming) 수단이다. 밈이 텍스트이든 이미지든 일단 표현되면, 내부집단의 적극적 참여와 동원이 그리고 외부집단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맥락화 되어있다.

지난 한 해 코인 시장은 시중에 풀린 돈이 NFT와 메타버스 등과 만나면서 호황을 기록했다. 상황이 돌변하면서, 코인 승자집단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던 #HFSP 밈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런데 #HFSP 변형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말 한마디로 곤욕을 치르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역미러링된 #HFSP은 디지털 자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해체 담론으로 프레임화되는 듯하다.

#HFSP 사례는 웃자고 만든 밈 한마디가 콘텐츠가 되어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유명인을 통해 이 콘텐츠는 집단 결속력을 높이고 지지기반을 넓히는 등 정치적 활동주의와 유사한 모습도 나타냈다. 나아가 서로 다른 이해집단들이 문화적 전술을 전략적으로 구사함을 시사한다. 디지털 자산의 특징과 요소를 경제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어지럽게 뒤얽힌 코인판을 명쾌하게 정리할 이론과 모델은 아직 없다. 오히려 일상의 거래 행위와 온라인 소통이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행동주의를 낳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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