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한담(閑談)
[문화칼럼] 한담(閑談)
  • 승인 2022.05.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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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한담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한가롭게 나누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며칠 전 열린 ‘이문열과의 한담’은 그냥 한담이 아니었다. 인간 이문열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편린들을 들을 수 있었고, 석재 서병오를 중심으로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 현창에 대한 고민 등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또한 이야기의 소재와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등이 필연적이라 할 만큼 좋은 에너지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자리였다.

이번 행사는 석재 서병오 선생이 창립한 교남시서화연구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에서 만든 자리다. 이 사업회는 2012년 이의익 전 대구시장님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석재의 종 증손자와 친구였던 이 전 시장께서 초대회장을 맡으며 시작된 것도 남다르거니와 2대 장하석 회장을 거쳐 현 회장인 김진혁과 이 사업회와의 인연도 예사롭지 않다. 김진혁의 외당숙께서 석재를 모시고 일본을 함께 다닐 만큼 가까운 제자였고 석재의 맥을 잇는 죽농 서동균이 학강 김진혁의 선생이다. 그러니 학강이 이 사업회를 맡게 된 것은 필연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날 이문열 선생을 특별히 모시게 된 것은 그의 중편소설 ‘금시조’가 석재와 죽농을 중심으로 서예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인연들이 만나 이루어진 이문열과의 한담이 열린 ‘한국의 집’도 석재 일가의 100년 고택을 품고 있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곳을 매입하여 다듬고 새롭게 만들어낸 이는 신홍식이라는 분이다. 그 자신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을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작가들의 후원자로 더 유명하다. 서병오는 정말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인데 마침 종로인근에 그와 관련된 고택들이 꽤 있다고 한다. “석재의 생가 가까이 있는 한국의 집과, 주변 석재와 인연 있는 고택들을 함께 다듬어 가면 서병오를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대구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생각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이날의 한담자리 외에도 정확히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교남시서화연구회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해보는 사업이 올해 계속 된다고 한다. 이것을 들여다보게 되면 왜 만들게 되었는지, 우리 서예 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를 우리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 단체를 만든 석재 서병오에 대한 현창도 더불어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미래를 위하여 중요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널리, 정확히 알리고 함께 공유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다. 왜냐하면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이런 가치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을 접하며 나의 몽매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석재의 ‘금시조’같은 빛에 잠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오래전부터 책을 통하여 접하던 소설가 이문열을 만나 직접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이었다. 그는 “작가가 된 것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되어졌다’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수입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특히 돈 쓸 시간도 없다. 한국에 문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단 하나의 단체·임원과 교류가 없었다. 함께하자는 권유도 받은 적 없다”는 말에 ‘독야청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하는데, 하나의 이념에 경도되는 사회는 곤란하다. 이런 조짐이 있으면 언제든 목소리를 내겠다. 젊은 날에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었으나 나이 들어서는 작품마다 진심, 의미가 담겨있다”며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을 내 놓았다. “미래는 영상이 문자를 지배할지도 모른다. 가끔씩 문자의 종말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것은 기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힘이 강한 소설이 있는가하면 ‘금시조’처럼 문장이 아름다운 작품도 있다. 묵향이 가득한 이 책은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어렵지만 서예인에게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깊이 알면 오히려 쓰기 어렵다. 들은 이야기와 자료집을 접한 뒤 보름 만에 단숨에 쓴 작품이다.” 서예에 관한한 까막눈인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는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예의 도’에 임하는 소설속의 석담(석재)과 고죽(죽농)의 푸른 기상에는 우리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지 않을 수가 없다.

고죽이 죽음에 임박하여 시중에 팔려나간 자신의 작품을 다 거둬들인 뒤 하나하나 살펴본 연후에 그것을 모두 불태워버리라 명한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고죽 일생의 작품이 타오르는 그 불길 속에서 마침내 금시조의 찬란한 금빛날개와 힘찬 기상을 보게 된다. 철저한 자기부정 속에서 예술은 완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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