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줄이기용' 임금피크제 제동…대법, 가이드라인 제시
'인건비 줄이기용' 임금피크제 제동…대법, 가이드라인 제시
  • 승인 2022.05.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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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실질 삭감 폭·업무강도 저감 등…임금 청구 줄소송 이어질 듯

대법원이 26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임금피크제를 채택한 전국 산업현장에서 노사 재협상 등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사회의 고령화 추세 속에서 기존 연공급 임금 체계로는 임금이 노동 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니 기업의 부담 경감과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 보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자는 취지로 2000년대 들어 도입이 시작됐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면서다.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 확대에 힘을 쏟았고 2015년 말에는 공공기관 전부에 도입이 완료되는 등 성과를 냈다. 또 300인 이상 기업체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이 2015년 27.2%에서 2016년 46.8%로 늘어나는 등 민간 분야에서도 빠르게 확산했다.

다만 고령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신규 인력 채용을 확대한다는 원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임금 등 분야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판결은 이런 임금피크제와 고령자고용법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의 규정 내용과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연령 차별 금지) 조항은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아무리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①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②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③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④ 감액 재원이 도입목적에 사용되었는지 등 조치의 적정성 등을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이번 사건의 원고 A씨(1955년생)는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됐고, 감액된 월 급여는 성과 평가가 최고 등급일 경우 약 93만원, 최저 등급일 경우 약 283만원이었다.

그런데 피고인 사업주가 제출한 자료를 보더라도 만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임금 감액 대상인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과 비교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55세 이상 노동자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도 없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 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이런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성과연급제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다"며 "업무 감축 등 적정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 성과연급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보면 연령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회사들은 고령자에 대한 적정한 조치를 취하거나 기준에 맞게 임금피크제 내용을 수정하게 생겼다. 예를 들어 임금피크제 적용자의 업무를 줄여준다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정년을 다소 연장하는 식의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A씨처럼 이미 퇴직한 사람들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도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심이나 2심에 계류 중인 관련 소송들에서도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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