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량 작가 개인전…갤러리 오모크 7월8일까지
이태량 작가 개인전…갤러리 오모크 7월8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5.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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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표현의 한계를 인정하는 과정의 산물”
명제형식·무경산수 연작 전시
숫자·글자로 자신의 한계 인정
의식적으로 그린 그림 감동 없어
그림 밖 ‘무의식의 확장’이 중요
이태량작-명제형식
이태량 작 ‘명제형식(命題形式)’

작품을 향해 단호하게 “표현의 한계를 인정한 결과”라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또는 매 순간 한계에 봉착하지만 그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범주의 문제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늘 불편하고,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태량 작가는 작품을 “표현의 한계를 인정하는 과정의 산물일 뿐”이라는 용기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의 출발은 한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 그의 태도가 묻어나는 작품들을 갤러리오모크에서 만날 수 있다.

‘한계’를 수용하는 태도는 작업의 주제와 긴밀하게 맞물린다. 그는 세계를 ‘말 할 수 있는 세계’과 ‘말 할 수 없는 세계’로 구분한다. 전자는 철학이나 과학, 윤리학 등의 학문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명제로 이미 확정지어 놓은 세계이며, 그는 이 세계에서 예술적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세계는 예술의 탐구 주제로 “매력을 상실했다”는 입장이다.

그의 관심사는 후자다. 예술의 탐구영역으로 “존재하지만 아직은 누구의 발길도 허용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상정한다. 물론 이런 입장은 많은 작가들이 지향하는 바이지만, 유달리 그의 의지는 단호하다. 그는 “‘또 다른 실재’를 찾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로서 ‘표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참과 거짓으로 판명되지 않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억지주장을 펼치려 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게 되고 거짓에 빠지게 된다”는 전제가 깔린 인식의 결과였다. 그런 오류를 범하기 않기 위해 표현의 한계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인식했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억지주장하게 되면, 즉 단순하게 재생하고, 나열하고, 피력하게 되면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는 “무의식의 영역에 의식을 들이대면 실패한다”는 논리를 펴며 ‘말 할 수 있는 세계’는 의식의 영역과 ‘말 할 수 없는 세계’는 무의식의 영역과 결부시킨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의식과 무의식의 양분을 통해 찾으려 했고, 그 첫 관문이 ‘표현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저는 은유적인 통로를 통해 ‘또 다른 실재’들이 스스로 드러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계획하고 기초하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며, 무의식의 세계는 무계획의 영역이다. 그런 믿음에 따라 캔버스 앞에 앉은 작가 자신도 ‘화면에 무엇이 드러날지’ 모를 정도로 작업은 무계획과 무의식에 기댄다. 예측불가능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세계를 화면에 구축해 간다.

이런 태도는 “나는 내일 어떤 작업이 나올지 몰라도 늘 행복하다”고 말한 게르하르트 리히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무엇이 드러날지?’, ‘어떤 붓 터치를 할지?’ 저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큰 기대감을 가지는 같아요. 그런 작업일 때 저도 행복하고 관람객들도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작업이 시작되면 화면에 무엇이든 채워진다. 그는 무의식의 소산을 화면에 구축하기를 희망한다. 의식의 활성화에 의한 결과는 뻔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의식의 이끌림으로 드러난 화면에서 작가 자신과 관람자 모두 감동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자신을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게 만든다.

그는 “나의그림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내 그림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주장하는 바도 없다”라고까지 했다. 그리고는 “정작 중요한 것은 제 그림 밖의 모든 것들에 있다”는 논리를 편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무의식이 확장되어져 가는 과정에 있지요.”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그가 얻고 싶고자 하는 가치는 ‘인식의 확장’과 ‘풍요로운 세상의 경험’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거나 생각만 하여도 좋겠다”고 강변한다. 의지는 강하되,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림을 통해 제시만 할 뿐, 최종적으로 ‘이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자족한다.

“관람자들이 제가 작업을 통해 제기했던 물음과 답변들이 엄밀히 헛소리임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올바르게 보고 삶의 의미가 명료하게 되면 그것으로 저의 역할은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바라고 상상하는 그림은 그런 것이죠.”

갤러리오모크 전시에는 그의 예술적인 철학을 반영한 ‘명제형식’ 연작과 ‘무경산수’ 연작을 전시했다. 추상적인 화면 위에 숫자나 글자 때로는 인쇄물이 꼴라주로 구축된 작품들이다. 숫자나 글자가 등장하는데, 단순히 조형요소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현실 세계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역설로서 기능한다. 말하자면 ‘자기부정’인 것이다. 그는 자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실재’에 다가간다.

두 연작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대목은 25920이라는 숫자와 X라는 조형적인 요소들이다. 25920은 인간의 하루 호흡수, 바둑판의 칸수, 지구세차운동의 주기다.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의 구성인자는 25920으로 동일하다. 작가는 25920을 현실세계의 상징적인 숫자로 화면에 새기고, 그것을 X 기호로 강렬하게 부정한다. X라는 기호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숫자 25920과 X 기호는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유는 나 자신을 경계에 세우기 위함이다.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비워내야 ‘또 다른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내 역할은 그런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갤러리 오모크 이태량 개인전은 7월 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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