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귀명창
[달구벌아침] 귀명창
  • 승인 2022.06.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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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귀명창이 있어야 소리명창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창을 잘하는 소리꾼(소리명창)이 있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제대로 즐기면서 감상할 수 있는 청중(귀명창)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나 이야기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멋진 판소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창을 잘하는 소리꾼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소리꾼의 소리를 들으며 북으로 장단을 맞추며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가 있어야 하며, 소리꾼의 소리에 울고 웃는 청중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을 때 멋진 작품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했으면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 잘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가감 없이 잘 전달하는 사람, 그런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한다. 본인 역시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말을 맛깔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럽다. 어쩜 저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지 늘 부럽다. 오랜 시간 말을 통해 먹고살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말하는 것은 늘 어렵다. 생각은 그게 아닌데 말이 헛 나올 때가 많다. 한마디로 내 입인데도 내 맘대로 안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운명이라 생각하고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을 잘 듣는 것만으로도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한 유명한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지식과 말의 능력을 믿으며 사람에게 좋은 상담을 해준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TV에도 출연하여 제법 실력 있는 상담사로 인정을 받는 그녀였다. 사람들의 상담이 줄을 이었고 고민이 있고,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을 치유해주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에 걸려 목이 심하게 아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랜 시간 자신에게서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을 상담하기로 한 날이었다. 목이 아팠지만 상담 전에 ‘목이 아파서 오늘은 말을 좀 아끼겠다’라고 양해를 구하고 어쩔 수 없이 상담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 상담의 시간이 흘러갔다. 상담사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몸짓과 추임새로 말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주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의 상담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만 전하고 상담을 정리했다. 상담사는 오늘 상담은 망쳤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상담받으러 온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반대로 상담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있었고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말씀 너무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상담하면서 오늘이 가장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자신은 목이 아파서 거의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음~’ ‘아~’ ‘오~’ 등과 같은 짧은 감탄사 정도의 말만 하며 고갯짓만 끄덕인 것뿐인데 좋은 말씀을 해주었다고 하니 참으로 이상했다. 그날 저녁에 그녀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긴 시간 생각 후 그녀는 깨달았다. 상담이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한다는 사실을. 이후로 그녀의 상담 스타일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말하기 80, 듣기 20을 했다면 이제는 듣기 80, 말하기 20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상담 스타일이 바뀌고 더 많은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었고 상담의 질은 더 좋아졌다고 한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말이라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가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말은 잘하고 싶어 하지만 말을 잘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잘 듣고 말을 배우듯, 사람은 말을 잘하기 위해서 먼저 듣는 것을 잘해야 한다. 그것이 순서다. 경상도 사투리를 늘 듣고 자란 아이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할 것이고, 제주도 사투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제주도 사투리를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을 듣고 자란 아이와 거친 욕설을 늘 듣고 자란 아이, 누가 더 말을 잘 할 것인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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