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치유의 인문학]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 승인 2022.06.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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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빡빡 깎은 민머리에 곱게 다려입은 승복과 하얀 고무신을 신은 풍채 좋은 스님이 상담실로 찾아왔다. 의외의 내담자라 놀라 본능적으로 합장을 했다. 스님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을까? 애써 궁금함을 감추고 조용히 물었다.

“스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전 스님이 아닙니다. 박수무당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당황한 건 필자였다. 어떻게 오셨냐는 나의 질문에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장들이 자주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간다고 했다. “할아버지 신, 할머니 신, 애기동자 신까지 이렇게 세 신장님을 모시고 있는데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싸워요! 그럼 할머니가 기분 나쁘다고 애기동자 신과 함께 제 몸에서 나가요. 그럼 할아버지 신장이 두 분을 찾으러 또 나갑니다.” 신들이 계실 때 손님들이 오시면 괜찮은데 신들이 없을 때 손님들이 오시면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본상담을 좀 배우려고 왔습니다. 놀라웠다. 신들의 세계를 잠시 엿본 것 같은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까?”

“주로 애정 관련 점사가 많습니다.”

“바람난 남편이 언제 돌아오는지 많이 물으러옵니다.”

정성껏 상담 노하우를 알려드리니 나갈 때 상담료 대신 복채라며 봉투를 놓고 갔다. 10만원. 그날 난 김 보살이 되었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20대 중반으로 결혼 한 지 딱 1년 된 여리고 조용한 여성이 왔다. 2시간 상담 내내 울기만 했다. 각 티슈 한 통을 혼자 다 썼다. 상담이 끝나자 난 생수 2리터를 단숨에 들이켰다. 고구마 세 개를 연달아 물 없이 먹은 것처럼 먹먹했다. 시어머니의 폭언과 남편의 폭력으로 그녀는 1년 만에 걸어 다니는 송장이 되었다. 아이 때문에 이혼도 못한다고 했다. 그녀의 울음은 화살을 관통당해 고통 속에 울부짖는 사슴의 소리를 닮았다.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울음이 몰아칠 때 난 휴지만 조용히 건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후에 내가 자신이 만난 상담사 중에 최고의 상담가라는 그녀가 퍼트린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난 분명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내담자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받아들였고 내담자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담자를 깊이 이해하려고 마음으로 경청했고 몸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그 진정성이 그분에게 닿았는 모양이다. 때로는 아주 때로는 우리는 말없이 상대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하루하루 말라비틀어진 북어포처럼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말기 암 환자…. 학교를 다닐 의미를 찾지 못해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중학교 3학년 학생…. 끝없는 의부증 때문에 너무 괴로워 몇 번이고 자해를 시도한 해골 같은 모습의 중년 여성…. 평생 죽도록 고생해 번듯한 사업체를 가졌지만 5년 동안 불면증 때문에 단 하루도 편히 잠을 못잔 중년의 사장님까지…. 모두 저마다의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다.

증상만으로 보면 모두 중증의 환자들이다. 오랫동안 묵힌 상처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딱딱한 돌이 되어 단단히 박혀 버렸다. 내게 온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연은 없다. 그들의 상처가 바로 내 상처였고 그들을 잠못 들게 하는 이유가 모두 나의 이유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게 코칭이나 상담을 받으러 온 벼랑 끝에 선 분들 중에 뭐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줄 아는가? 없다! 그저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다. 난 그들의 마음에 있던 ‘걸림돌’을 치워 주었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 주었으며, 줄어든 마음 근육을 키워 주었을 뿐이다. 경청하고 토닥이며 위로하고 보듬어 주고 직면시켰을 뿐인데 그들은 그 힘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세상의 모든 신경증은 결국 왜곡된 자기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오랫동안 주역과 명리학을 연구하셨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성삼아~! 내가 오랫동안 사주명리를 공부해 보니 한 사람의 운명과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게 사람들은 ‘관상’과 ‘사주’인 줄 아는데 절대로 그건 아니다. ‘심상’이 제일 중요하다. 마음을 바르게 쓰고 남을 배려하고 덕을 많이 쌓으면 관상도~ 운명도~ 바뀐데이~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명심하고 또 명심 하거래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나의 비밀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아버지가 내게 알려준 ‘심상의 힘’ 즉, 선순환의 ‘마음근육’을 키우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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