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진짜 대구사람들, ‘삶은 명사가 아닌 동사’
[화요칼럼] 진짜 대구사람들, ‘삶은 명사가 아닌 동사’
  • 승인 2022.06.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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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문학박사·시인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용어로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라는 뜻이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류)’의 합성어인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는 영국의 이코노믹스 잡지에서 2015년 처음 사용하였다. 포노 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sapiens)에 빗대어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을 일컫는다. 이렇게 포노 사피엔스로 불리는 인류에게 스마트폰은떼려야 뗄 수 없는 신체 일부가 되었다. 오장 육부가 아니라 오장 칠부라고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간, 쓸개 밑에 있는 장기가 스마트폰이라는 것이다. 각 장기는 우리 신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제7의 장기라는 이름을 얻은 스마트폰은 특히 뇌와 인간의 습관에 큰 영향을 준다.

며칠 전 나는 제7의 장기를 잃었었다. 그 사실을 알고, 행선지 중 짐작 가는 곳을 다 훑어보았지만 찾지 못한 채 밤이 깊었고 새벽녘에는 중요한 일정으로 일찍 일어나 강원도 원주행 버스를 타야 했다. 평소 스마트폰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낯선 곳으로의 여정을 앞에 두고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도, 받을 수도, 궁금한 사항을 확인할 수도 없는 내 처지를 떠올리니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의 주인공 척처럼 망망대해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듯 불안이 밀려왔다. 일정의 많은 부분을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의 불편을 감지한 몇몇 동료는 스마트폰 수색대원인양 노력과 성의를 다하여 대책 방안까지 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먼 곳으로 떠나와 있었고, 다음날부터는 연휴가 이어지는 등 어려움투성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기억은 아예 접어두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 뒤 아침에 눈을 떴다. 습관처럼 마당에 내려 푸성귀를 다듬다가 대문 근처 울타리로 눈을 돌렸다. 장마철 흙쓸림 방지용으로 깔아둔 검은 발판 아래 하얀 종이가 펄럭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뭔가 가서 보니 물 젖어 부푼 종이 위에 또박또박 정성껏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동대구농협만촌우방지점에서 휴대폰 보관하고 있어요. 토, 일은 휴무라서 월요일 찾아가세요. 대구문화재단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연락 왔어요. 김숙이.” 와우! 스마트폰을 찾았고, 과거의 많은 기억 환원된다는 기쁨도 잠깐, 내용이 이상하고 놀라웠다. ‘선생님!’, ‘동대구 농협...지점’, ‘휴대폰’, ‘대구문화재단’, ‘범어아트스트리트’, ‘김숙이’ 등. 분실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명사들의 조합과 좀체 찾기 힘든 우리집 대문 앞에 나를 호명하는 글이 꽂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력은 참으로 간사했다.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적었던 기억은 새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그날 은행 자동화기기 앞 분실물을 들고 반환 방법을 모색하던 김채순 부지검장은 폰 겉장에 꽂힌 명함 속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대구문화재단 이정미 팀장은 내가 가끔 들르는 범어예술의거리로 최근 자리이동이 있었고, 여러 사업자 가운데서 ‘대구대표문인 글그림전’ 기억을 소환해 적확한 연결고리가 될듯한 국제펜한국본부대구지역위원회 김숙이 부회장을 찾아내고, 김숙이 선생은 사무처 이장희, 모현숙, 김교희, 박권욱 국장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네비게이션 따라서 먼 길을 돌고 돌았지만 우리집은 부재중이었다. 꼼꼼하게 내용을 적고 대문 옆 우체통에 넣었다가 혹시 그냥 지나칠까 걱정되어서 대문 초입 바닥에 깔아둔 발판 아래 종이가 날아가지 않도록 귀퉁이를 눌러 끼워 눈에 띄도록 해 둔, 여러 사람들의 자취들은 삶을 명사로 두지 않고 동사를 넘어 동명사로 바꿔 실천한 기적을 만나게 했고, 눈물겹도록 놀라움을 선물했다.

나는 ‘대구사람’이란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반도 역사의 질곡에는 굽이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대구가 대구사람이 있었다. 투박하고 덜 세련되고, 덜 다정하지만 내면에 스민 우직한 진국이 대구의 대구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이상화, 이장희, 현진건, 백기만 등 걸출한 문인들이 한국문단을 자랑스럽게 지탱하는 데는 그들의 일상 자체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삶이였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작은 일을 귀찮게 여기거나 묵히거나 덮어두지 않고 제자리 찾아서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이름들이 오늘은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나에게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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