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빈자일등(貧者一燈) 위대한 장학금
[대구논단] 빈자일등(貧者一燈) 위대한 장학금
  • 승인 2022.06.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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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전북대 초빙교수
5월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갔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전주를 둘러싼 산에는 곳곳에 절이 들어 앉아 있었다. 사월초파일이 가까워지면 절에 켜놓은 연등이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북한에서도 김정은 일가의 생일날이면 폭죽 불꽃놀이로 고달픈 인민들의 삶을 잠시라도 녹여준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장단거리 미사일로 세계인까지 이 놀이에 동참시키고 있다. 미사일을 만들어 쏘는 거야 제 맘이겠지만 수많은 인민들의 생활은 어렵고 고달프다. 인민들이야 죽든 살든 세계를 위협하는 핵폭탄과 미사일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죽어나는 건 아무 죄도 없는 인민들뿐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 절에 다는 연등 값조차 내지 못하는 집들이 많았다. 식구 수대로 연등을 달아야 좋다는데 한 등 켜기도 어려운 사정이라 정성을 모아 겨우 한 등 값을 마련했다고 해서 빈자일등이라는 말이 생겼다.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도 줄이고 입을 옷도 사지 않아야 겨우 만들 수 있는 등 값을 마련하는 정성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큰 부자의 돈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

돈에 매겨진 화폐가치만 따진다면 부자가 낸 많은 돈이 훨씬 값어치가 있겠지만 인간의 정성 값으로 치면 가난한 이의 한 등 값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뿐더러 오히려 더 큰 교훈을 주는 효능이 있다고 본 것이리라.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향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이르렀다. 명실 공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본인의 뜻만 있으면 학교에 다니는데 큰 애로점은 없어졌다. 수많은 장학금이 어느 학교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제법 풍성하다. 많은 기관과 개인들의 장학금이 답지해 있다. 큰 회사의 오너들은 엄청난 액수의 장학금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장학금을 기부하면 정부에서 세금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에 알맞은 혜택을 주기 때문에 기부장학금이 기업 경영상 지장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이런 기업풍토 속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영세한 국민들의 주머니 돈 기부는 사회를 향한 조용한 외침이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작은 정성이 모아져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를 살피면 가난한 사람들의 기부금이나 장학금은 사회에 대한 영향력만으로도 부자의 큰돈 못지않다. 언젠가 고대 앞에서 평생 장사를 했던 부부가 물경 400억에 해당하는 땅을 기부하여 큰 충격을 안겼다. 자식들을 설득하여 상속을 포기하게 만들고 그 큰돈을 아낌없이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은 범인들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들 뿐이 아니다. 큰돈이 아니어도 좋고, 작은 돈이어서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내가 아끼고 안 쓰고 모은 돈을 사회공익을 위해서 선뜻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제일조다.

이번에 86세 되신 할머니가 있는 돈을 모조리 털어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나서 한 말씀은 이 세상의 금과옥조다. “평생을 가난과 노동 속에서 살아왔는데 다 주고나니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하네요.” 누가 잘난 사람이라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할머니는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 장학금 1억5백만원을 기탁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박순덕할머니는 작년 6월에도 3천550만원을 기증한 바 있다.

당시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장학금을 기부하겠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약속한 바 있는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박순덕할머니에게 1억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그는 평생 길거리에서 우리가 쉽게 만나는 폐지수집으로 하루하루 살아온 사람이다. 가난 속에서 19세에 고향을 떠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기에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또래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경제적 사정으로 자신의 공부는 접어야 했지만 가난한 고향의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고 싶어 한푼 두푼 모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읍시 칠보면이 외가다. 저의 어머니는 전주로 출가하여 나를 막내로 낳았지만 1981년 내가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80세에 세상을 뜨셨다. 성씨도 같은 박씨여서 박순덕할머니가 남 같지 않은 느낌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귀중한 장학금을 기여한 박할머니의 원대한 뜻이 널리 퍼져나가 우람한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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