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빙하기 지나 기온 오르며 먹거리 풍성한 동굴 밖으로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빙하기 지나 기온 오르며 먹거리 풍성한 동굴 밖으로
  • 김종현
  • 승인 2022.06.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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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지구촌 최초로 한반도에서 벼농사 시작
온난해지며 해수면 100~160m 상승
1만~6천 년 이전에 오늘날 모습으로
신천수변 동굴서 물고기 잡이로 생활
팔공산·비슬산 기슭서는 산짐승 사냥
살기 좋은곳 찾아 생사쟁탈전도 벌여
문화란 말은 중세영어로 ‘경작된 땅’
백성에 씨앗 뿌리고 가꾸는 법 가르쳐
농기구 개량해 농업생산력 증가 시켜
한반도 살았던 선인들 풍족한 삶 영위
신가유빗살
햇살도, 빗줄기도 날카로운 나무꼬챙이나 돌로 토기에 새겼다. 그림 이대영

◇수렵채취 떠돌이 삶을 청산

지구촌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기후가 온난해짐에 따른 100 ~ 160m 가량 해수면 상승으로 서해도 1만 년 내지 6천 년 이전에 오늘날 모습으로 드러났다.

포경어로기록화(捕鯨漁撈記錄畵)인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1만 년 이전 후기구석기 때(Late Stone Age) 해수면이 그렇게 깊지 않아 일본(九州)까지 포경을 나갔다는 사실이 암각화에 그려져 세계최초 포경작업을 했었다.

이와 같은 시기 달구벌에서도 i) 신천수변 동굴에 살면서 물고기 잡이로 생활을 했고, 팔공산과 비슬산 기슭에서는 산짐승을 사냥해서 먹고 살아갔다. ii) 그들에게 가진 재산이라고는 남자는 산에서 꺾은 막대기뿐이었고, 사냥해 먹었던 동물의 뿔과 뼈다귀가 전리품이고 가보였다. 여성들에겐 물 섶에서 주어온 작고 앙증스러운 돌멩이와 조개껍데기들이 애완용품이고 귀중한 재산이었다. iii) 떠돌이생활이라고 해야 아내와 자식들(原始核家族, primitive nuclear family)을 앞세우고 작대기 하나만 손에 들며,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났다. 오직 밤하늘별만을 등대로 삼아 꿈을 찾아 떠났고, 햇살이 쏟아지는 양지바르고, 평온한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풍부한 먹거리가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그들에게 오늘날처럼 국경도 영토도 없었다. 살아있는 짐승이 어디를 못 가나? 지구촌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때로는 먼저 차지하고 있는 동물 혹은 사람과는 생사쟁탈전까지도 해야 했다. iv) 언어라곤 단순한새소리, 동물 울음소리, 천둥소리, 화산폭발 굉음 등을 모방했던 의성어(onomatopoeia words)만 사용했다. 또한 사람, 나무, 태양, 달, 산, 돌멩이, 소, 개, 냇물 등의 모양을 본뜬 몸짓 말(body language) 혹은 의태어(mimic words)가 생겨날 뿐이었다. 수렵채취의 결과물인 먹거리에 대해 크게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한 수치(手足數値, 손가락 10개 + 발가락 10개 = 20개)만큼 수량개념을 가졌다. v) 대자연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생명체로 ‘절대적 힘’을 가졌다는 대상에 대해서 경외감과 숭배사상까지 가지게 되었다. 해·달·별은 물론이고 큰 바위, 큰 나무 혹은 짐승 등에게도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가졌다. 여기서 자연숭배신앙(nature worship)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vi) 살기 좋은 동굴을 차지하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오늘날 우리가 손바닥 지문(palm print)을 남기듯이 손바닥을 암벽에다가 대고 주변에 황토색(혹은 검정점토)을 칠해서 손바닥그림(palm picture)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4만800년 전 스페인 ‘엘 카스티료(El Castillo)’ 동굴벽화와 BC 2만2천 년 전 프랑스 라스코(Grotte de Lascaux) 벽화에서도 하늘의 별, 사냥하면서 다친 사람과 죽어가는 동물을 벽에다가 그림(memorial picture)으로 남겼다. vi) 소중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밥그릇에도, 소중한 나무작대기에, 강섶에서 주어온 조약돌에도 축복을 기원하는 그림과 새김을 남겼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光紋, sun-line pattern)도, 풍년들게 하는 빗줄기(雨紋, rain-line pattern)도 날카로운 나무꼬챙이나 돌로 토기에 새겼다. vii) 당시 옷이라고는 더위에 그늘을 만들고, 추위에 바람을 막아주는 넓적하고 큰 풀잎사귀, 넓적한 나무껍질, 사냥해서 잡은 동물가죽, 큰 물고기의 피부껍데기 등을 사용했다. 물론 작은 풀잎이나 나무줄기는 꿰매거나 엮기도 했다. 딱딱한 나무껍질(누릅나무, 자작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나 혹은 가죽(동물, 물고기)에다가 다듬질, 방망이질 혹은 무두질을 통해 부드러운 옷을 만들었다. viii) 추운 빙하기 때에는 깊숙한 석회동굴(깊이 20~ 30미터, 길이 50~100미터)에 평온하게 살았으나, 기온이 따듯해지고부터 먹거리가 풍성한 동굴 밖에서 정착하면서 새로운 천지가 개벽되었다.

◇문화란 농경에서 시작해 영혼경작(cultivation of the soul)까지

“씨앗을 뿌릴 땅이 있다면 예술도 기술도 생겨났기에 경작자란 바로 인간문명의 선각자이다(Where tillage begins, other arts follow. The farmers therefore are the founders of human civilization).”라고 데니얼 웹스터(1782~1852)가 말했듯이 문화(culture)란 기원은 로마 웅변가 키케로(Cicero)의 ‘투스쿨란의 대화(Tusculanae Disputations)’에서 최초로 영혼의 경작(cultura animi, cultivation of the soul)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나왔다. 미국 철학자 에드워드 케이시(1939년생)가 1986년 저술한 ‘정신과 영혼(Spirit and Soul)’에서 “문화란 말은 중세영어로 ‘경작된 땅(cultivated earth)’을 의미했으며, 같은 말로 ‘거주하다. 돌보다, 경작하다. 예배하다.’라는 라틴어 ‘콜레레(colere)’에서 유래했다.”고 돼 있다.

영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1832~1917)는 1871년도 발간한 저서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에서 문화(culture)에 대해 ‘지식, 신념, 예술, 도덕, 법, 관습 및 사회구성원으로써 인간이 획득한 기타능력과 습관을 포합하는 복잡한 총화’라고 개념을 정리했다. 옥스퍼드 사전에서도 문화의 뜻풀이를 ‘특정한 시기에 특정집단의 삶의 방식, 특히 일반적인 관습과 신념’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문화생활이란 의미의 세계에서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person of worth within the world of meaning)이란 인식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약 5만 년 전부터 인간행동의 진화, 학습능력,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통해서 문화를 축적해 나갔다.

동양서지학에서 BC 2천700년 이전에 한민족(東夷族) 신농씨(神農氏, 생몰년도 미상)는 i) 백성들에게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방법을 가르쳤고, ii) 농기구로 쟁기, 서래 등을 개량하여 농업생산력을 증가시켰으며, iii)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해가면서 식물독성계측,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iv) 보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식치와 약초를 정리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란 의학서적을 저술했다. 이를 통해서 한반도에 살았던 선인들은 건강하고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선 풍년가 ‘연연세세 풍년이 들었네. 오곡이 풍성하게 잘도 여물었네(五穀豊穰, ごこくほうじょう).’라고 노래하고 춤을 췄다는 일본기록이 있다. 오곡이란 인도에선 보리·밀·벼·콩·깨이나, 중국에서는 참깨·보리·피·수수·콩을, 일본에선 벼(쌀)·보리·조·콩·기장이었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오곡을 달리 생각했다.

가장 오래된 농작물은 피(稷)로 원산지는 한반도와 아시아다. BC 8천 년 이전 선사시대 오곡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가는 식량이었다. 중국의 주나라는 피를 조상신으로 모셨으며, 사직(社稷)이란 국가 종묘와 피의 신(稷神)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농사를 담당했던 관직으로 후직(后稷)이 있었다. 당시 백성들의 먹거리를 산출하는 후직(后稷)을 찬양하는 ‘시경(詩經, 民勞)’의 구절에선 “백성들 또한 고달프니(民亦勞止), 천지가 감응하여 국가시조(國家始祖)를 탄생시켰다”고, 즉 농업신인 후직을 찬송했다.

중국고서를 통해서 보면, 허신(許愼, 58~ 148)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피(稷)란 “기장(梁) 혹은 조(粟)를 칭하기도 하며, 오곡의 으뜸이다. 벼화(禾)에서 음으로 직을 결합해서 만든 글자다”라고 했다. BC 500년경 시가집(노래집)이었던 시경(詩經)에서도 “저기 기장 이삭이 넘실넘실 거리고, 저쪽 피도 이삭이 돋았구나. 가는 길 머뭇머뭇 더디어만 가네. 마음을 울렁울렁 둘 곳이 없어라” 또한 도연명의 ‘도화원시’에서 “뽕나무와 대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콩과 피는 때에 맞춰 좋은 그림을 그리네 그려”라는 구절이 풍요로움을 안겨다줬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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