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베이비박스’로 엮인 이들의 기묘한 여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베이비박스’로 엮인 이들의 기묘한 여정
  • 김민주
  • 승인 2022.06.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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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버린 엄마와 브로커
‘새 부모’ 찾아 동해안 누벼
가족 부재 겪은 인물들
동행하며 정신적으로 연결
다양한 가족 형태 보여준 감독
낙태·입양 문제 냉철하게 다뤄
영화브로커스틸컷
영화 브로커 스틸컷.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한 교회 앞 비옷을 입은 여자가 차가운 길바닥에 내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갓난 아기이다.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앞에 아이를 버린 여자는 곧장 자리를 떠나버린다.

버려진 갓난 아기는 새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선의와 약간의 수수료를 얻고자 브로커 일을 하고 있는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의 손에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날 아기 엄마인 소영(이지은)이 아들 ‘우성’을 찾으려 돌아오자 이들은 소영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고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몰래 지켜본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 이형사(이주영)는 이들을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하고자 조용히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한 영화 ‘브로커’가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이주영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캐스팅과 올해 칸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 배우 송강호의 첫 남우주연상 수상까지 흥행 수식어를 모두 안고 지난 8일 기대 속에 개봉했다. ‘낙태’와 ‘입양’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따뜻하지만 냉철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간 고레에다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8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 등의 작품에서 꾸준히 가족과 그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번 신작 ‘브로커’ 역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잔잔한 영화로 대중성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이전 필모그래피와 다른 점은 허구의 가족을 만들었으며 가족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소재인 ‘브로커(의뢰를 받고 매개를 하여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중매인)’를 활용했다는 점이 이 영화만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베이비 박스’ 그곳에서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된 이들의 아이러니한 여정. 누가 봐도 가족 같은 실루엣인 이들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브로커’로서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기 위해 낡아빠진 승합차를 타고 포항, 울진, 삼척, 강릉 등 동해안을 누빈다. 관객들은 그들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점차 ‘유사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본다.

사실 이 유사 가족 관계는 모두 ‘부재’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 혹은 가족 전체가 부재하거나 가족이라도 소통이 전혀 없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폐차 직전의 낡은 승합차는 마음 속 부재를 가진 채 살아온 그들에게 새로운 안식처의 공간이 된다. ‘브로커’ 메인 포스터에 끈처럼 연결된 타이틀 로고처럼, 그들의 여정 곳곳에는 서로를 향해 연결된 끈들의 집합체가 담겨있다.

사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은 범죄자이기에 머리로는 ‘그들을 절대 이해하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계속 감정적으로 그들에게 마음이 와닿게 되는 데는 아마 배우들의 열연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빈털터리 브로커지만 인간성마저 깨지진 않은 ‘상현’ 역에 송강호를 염두해 두고 7년 전부터 작업했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후일담처럼 송강호의 연기는 ‘상현’ 그 자체였다. 무거운 분위기를 밝게 환기시키는 표정 연기는 웃기려고 하지 않지만 웃음이 터지고, 울리려고 하지 않지만 눈물이 맺히게 된다. 왜 칸이 ‘남우주연상’ 주인으로 그를 택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다만 영화 ‘브로커’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마치 일본어를 번역한 듯한 느낌의 대사나 문어체적인 문장 구조의 대사가 다수 나오면서 어딘가 어색하고 약간의 위화감이 들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첫 한국 영화를 만들며 한국의 배경, 정서를 이해하려 꾸준히 조사하고 긴 시간을 제작 과정에 투자했으며 주연, 조연, 단역까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이 대사들이 극의 전개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으로 눈에 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브로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여운을 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사실 영화 ‘브로커’는 대단한 반전도, 결말 자체도 친절하진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넘실대는 강물 같은 영화다.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결치듯 관객들에게 부드럽게 밀어 넣는다. 때론 따뜻한, 때론 애달픈 감정이 가슴에서 물결쳤다. 그리고 그 여운은 여전히 찰랑거린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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