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내 마음의 주치의
[치유의 인문학] 내 마음의 주치의
  • 승인 2022.06.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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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한눈에 보기에도 여린 중학생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삐쩍 마른 몸에 키는 컸고 얼굴엔 여드름, 코밑에는 솜털이 송송하게 올라왔다.

“선생님들도 저를 포기했어요. 제가 수업 시간에 자도 이젠 아무도 안 깨워요.”

학교에서 선생님도 자기를 포기했다고 씁쓸히 웃던 학생. 집에선 고등학교도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자칭 문제아였다. 하지만 필자의 연구실까지 스스로 찾아온 의외로 의젓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학생이었다. 부모에게 전해 들은 학생의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에 필자는 ‘부모님과 선생님들도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구나’를 직감했다.

“잘 들어! 난 상담과 코칭을 하는 동안 너에게 공부를 강요한다든지 도덕적 의무감을 절대 요구하지는 않을 거야!”

“그냥 나이 많은 멋진 친구가 한 명 생겼다고 생각하면 돼?”

“다만 첫 번째 만남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널 친구로 받아줄지 돌려보낼지는 내가 결정은 한다. 이 점만 분명히 해두자.”

‘절대로 공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상담사의 말에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꼴찌를 밥 먹듯 했던 학생의 입장에선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을 것이다. 게다가 ‘라떼도사’가 아니라는 말에는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담을 받아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생님이 결정한다는 말에 살짝 당황하는 눈빛이 읽혔다.

공부를 거부하고 진학까지 거부한 아이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척도검사와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무의식검사까지 모두 마쳤다. 검사결과를 가지고 상담하면서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그동안 외로웠을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아이는 살면서 한 번도 선생님과 부모에게 긍정의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아이’로 집에서는 ‘게임만 하는 아이’로 인식되었으니 무슨 기대가 있었겠는가. 유일하게 받은 칭찬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때라고 했다. 결국, 아이가 집과 학교가 아닌 밖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겠다는 아이의 신념…. 그 속에 외로운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필자의 상담 미션은 분명하게 정리되었다. ‘작은 성취감’과 ‘칭찬’. 성취감은 자존감과 연결되고 칭찬은 삶의 의욕과 직결되어있다. 이 둘은 성장기 아이들의 심리적 영양제다. 이 영양소가 결핍되면 ‘거부’와 ‘저항’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을 학교의 성적과 유교적 시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00아! 선생님이 너에게 게임 같은 미션을 줄텐데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할 수 있겠니?”

“무슨 미션이죠?”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만 정확히 적어 올래?”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요?”

아이는 약속대로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적어왔다. 참으로 신기한 건 그렇게 미션을 주었을 뿐인데 매주 한 번 적어오는 아이의 취침시간과 기상 시간의 질이 좋아지고 있었다. 약속을 정확하게 지킨 부분에 대한 폭풍 칭찬이 따랐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어진 두 번째 필자의 미션은 ‘이불 정리하기’였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미션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정리하는 행동수정의 시작이다. 처음엔 서툴렀던 이불 정리 미션도 시간이 가면서 차츰 깔끔해졌고 나중에는 시키지도 않았던 방 정리까지 완벽하게 미션을 수행했다. 물론 이어진 폭풍 칭찬은 덤이었다.

작은 하나의 습관을 바꾸었고 동시에 칭찬과 응원만 했을 뿐인데 10주 후 아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던 아이가 대학 가서 무엇을 전공할지를 생각했고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자신의 멘토를 크게 확대해서 붙여 놓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의 멘토에 대해 직접 발표해달라는 필자의 요구에 대학생보다 더 진지하게 발표하는 모습도 보였고 다양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했다.

“선생님은 저의 주치의 같습니다. 마음의 주치의요.”

상담 회기를 모두 마치고 소감을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이다.

“00아~, 부모님도 선생님도 가끔은 네가 가진 빛나는 보석을 못 볼 때도 있단다. 그렇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라. 사실 너도 내가 끄집어내어 주기 전에 네 안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잖니?”

“네 안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있다는 걸!”

‘마음의 주치의!’

아이의 말처럼 낮은 자존감과 결핍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마음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차가운 내 손을 잡아주는 마음과 손이 따뜻한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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